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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별 May 22. 2023

왜 우리가 서울대에 가야 해?

기쁜별의 유년 에세이2


책 좋아하고 공부 좋아했던 아빠는 우리에게 책을 사준 적이 많았다.



기억나는 책을 몇 권 뽑으면 <재미있는 수학여행> <하버드생은 이렇게 공부한다> <총 균 쇠>이다.


먼저 <재미있는 수학여행>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집에 오면, 여행 가는 수학여행 책인 줄 알고 들었다가 진짜 공부 수학 내용이라 바로 내려놓았던 책이다. 수필이나 에세이집 정도 보통 크기 책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같은 이름으로 만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때는 글씨만 있었다. 그 책을 내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읽으려고 폈다가도 지루해서 금방 내려놨으리라.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하버드생은 이렇게 공부한다>는 제목이 정확하지 않다. 여하튼 하버드생 공부 방법에 대한 내용이 적힌 책이었다. 내가 중학교 때 아빠가 사주셨다. 언니가 고등학생이었고, 언니에게 먼저 보라고 사줬던 기억이다. 당시 나는 반에서 1등을 독차지하거나 이런 역사가 없었다. 서울대도 못 갈 성적인데 하버드라니. 우리에게 은근한 압박을 주는 기분이었다. 가난하다고 생각했기에 속으로 하버드 간다 하면 보내줄 형편은 되나? 하며 심통을 냈었다. 아빠가 헛꿈 꾼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총 균 쇠>는 아빠가 신문에서 오려준 <서울대생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20>에 포함된 책이었다. 책을 사준 신 것은 아니었고 스크랩한 신문지를 주셨다. 서울대를 못 갔지만 대학 입학 첫해 저 종이를 주면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중 기억에 남는 책이다. 읽지 않았다. 제목이 너무 비호감이라서. 균이 가장 싫었고, 총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강렬했지만 그만큼 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몇 년 전에 읽었고, 제목 때문에 들지 않았던 그때를 약간 후회했다.



아빠가 준 많은 책이 서울대'를 향해 있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공부에 대해서 물어보고 말씀하셨다. 가끔 공부 방법도 알려주셨다. 아빠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렇게만 하면 공부가 잘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점수가 오르지도 않았다. 왜 안되지? 자책했다. 그런 나에게 실망했다. 학교 성적이 내 가치였다. 점수가 나쁘면 볼품없는 아이가 되었다.



교육 철학도 철저하셨다. 학원이나 과외는 없었다.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며 우리에게 스스로 공부하도록 독려했다. 수능 최고점 학생 인터뷰처럼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혼자 교과서로 공부했어요."를 실천하도록 했다. 나도 알았다. 학원이 중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었고, 끝없이 푸는 문제가 지겨웠다. 공부는 나를 이기는 일이었다. 나는 나를 이기기보다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덕분에 성적은 늘 고만고만했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삼천포에서 잘했지만 서울대에 가지 못한 큰언니 대입 결과 대한 아쉬움이었다. 더 큰 학교에서 공부시켜야겠다는 아빠 욕심과, 공부 잔소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욕구가 일치되었다. 진주여고에 입학해 작은아버지 집에서 지냈다. 주말이면 집에 가고 싶었다. 새 아파트인 작은아버지 집보다 허름한 우리 집이 편했다. 하지만 아빠는 내려오면 반가워하기보다 공부해야지 왜 왔냐고 하셨다.



공부, 공부, 공부. 내 성적표에 서울대는 가당치 않은 걸 알 텐데 왜 자꾸 서울대일까?. 끊임없는 서울대 요구에 질렸다. 서울대와 먼 모의고사 점수는 부끄러웠고, 부모님께 죄송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왜 우리가 서울대에 가야 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아빠의 서울대 목표는 나에게로 넘어오지 못했다. 미리 질려서 마음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꼭 서울대 가고 싶다 생각한 적 없이 '되면 좋지' 정도로 내 마음에 있었다. 그러니 될 리가 없었다. 마음의 짐만 키우며 지냈다. 고교 시절 동안.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고 한 번쯤 "왜 우리가 서울대에 가야 해?" 소리쳐 물었다면 뭐라고 답하셨을까? 혼날까 봐 못 했던 말을 지금이라도 해본다. 당연하게 받아들인 서울대를 비틀어본다. 꼭 가야 하나? 가면 뭐가 좋아서? 왜? 왜? 왜!


© greg_rosenke, 출처 Unsplash



지금 다시 돌아보면, 아빠의 서울대가 진짜 서울대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크게 잡고 열심히 하라는 말이었을 텐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에 무거운 마음만 가졌다. 그때 저렇게 이해했다면 달라졌을까?



이제 내가 아이를 키운다. 공부하라는 말부터 이런저런 말을 아이에게 한다. 나도 나만의 기준으로 아이를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강요하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강요할 때도 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아이도 그렇게 여길까?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지 뜨끔해진다. 부모의 걱정과 불안은 자주 아이보다 앞서있다. 두려움에 내 아이를 끌어당기지 않기를. 아이가 부모 기대에 맞춰 달려가다 넘어지지 않기를. 같이 손잡고 오래 걸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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