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면 레전드, 실패하면 파산 아닙니까
2007년도쯤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당시 열심히 차트 관련 책도 보고, 잘 이해도 되지 않는 기업 분석 자료, 재무제표 읽는 법, 가치 평가 뭐 이런 거 공부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결과는 폭망이었다. 마침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터지면서 나의 주식 투자는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벌써 16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회사를 열심히 다니던, 한참 젊었던 이 시기에도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서 주식 투자든 뭐든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창업도 일종의 재테크, 자기계발의 일환이었다. 어차피 나의 운명은 치킨집인데, 자영업 경험을 그래도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해봐야 한다는 생각과 그나마 업계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자영업은 영화 제작사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닐 때부터 일종의 재테크처럼 생각하며 제작사를 차릴 준비를 했다.
제작은 일단, 영화화 될 수 있는 IP를 확보하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제작사의 초기 투자금이란 이 IP를 확보하는 비용이다. IP확보의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이미 흥행된 바 있는 소설이나 웹툰 등 원작의 영화화 판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인 소설이나 큰 흥행을 한 웹툰의 판권은 어마어마하게 비쌀 뿐더러, 유수의 제작사들이 빠르게 선점한다. 최소의 자본을 가지고 시작하는 나같은 신생 제작자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작은 나와 비슷한 수준의 신인 작가 시나리오를 구매하는 것!
마침 20대때부터 영화 만들어보자고 했던 업계 지인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있었고(지금은 어마어마한 드라마 작가님이 되셨음!), 한 명은 잘나가는 광고 회사 대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광고 회사 대표님과 함께 신인 작가의 시나리오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제작을 시작했다. 이 때, 내가 투자한 금액이 500만원. 나는 당시 영화 투자배급업을 하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고, 어차피 월급의 일정 부분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하는데 잘 하지도 못하는 주식에 투자 하느니 추후 제작사 독립의 기반이 될 IP에 투자를 하자는 생각이었다.
첫 계약한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독립하여 영화 제작사를 차리고 제작한 영화 두 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는 분명하다. 이 시나리오의 감독을 구하기 위해 만났던 사람이 <연애빠진로맨스>의 정가영 감독이었고, 이 시나리오의 기획이 영화 <롱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2014년 500만원의 투자를 통한 사이드잡으로 시작한 제작이 2019년 본격 창업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혹시 그 과정이 궁금하다면, 아래 브런치 북 참조바람. 도저히 짧게 할 수가 없는 이야기임.]
[브런치북]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 (brunch.co.kr)
결론만 말하자면, 어렵게 제작에는 성공했지만 제작한 영화 두 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에는 실패했다. 회사 유지에 드는 여러가지 비용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가용 자산은 600만원 정도? 10년전 500만원으로 영화 제작을 해보겠다고 시작한 이후 내게는 영화 제작자라는 크레딧과 명예, 좋았던 추억, 나쁘고 아팠던 기억, 새로 생긴 인연들과 정리된 과거의 인연들, 영화화되지 못하고 쌓여있는 시나리오들, 그리고... 600만원이 남았다. 그러고 보니, 돈은 못 벌지지만 뭐가 많이 남았네. 대신 10년 후의 나는 10년전의 나보다 인지력이 조금 떨어지고, 눈은 많이 침침하고, 손도 많이 느리고... 음...
나이 들수록 사실 새로운 걸 하는 게 힘에 부친다. 그렇지만 영화 투자의 기회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고 안그래도 가지고 쌓여있는 책이 많은데 또 새로운 시나리오 개발에 투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 도전하기로 하고 숏폼 시네마를 만드는 데 남은 600만원을 올인하기로 하였다.
600만원의 제작비는 아래와 같이 쓰였다.
- 장소대여비 : 190만원
- 배우 인건비 : 120만원
- 촬영 장비 및 스텝 인건비 : 240만원
- 의상 소품 및 진행비 : 50만원
감독님이 촬영감독과 감독, 콘티 작업을 겸해 주시고 나는 의상, 미술, 소품, 스크립터 역할을 겸함으로서 인건비를 최대한 아끼려 했다. 평소에 의상이나 미술, 소품 같은 것에 유난히도 관심이 1도 없고 쇼핑을 즐기지 지않아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난 현장 출신이 아니라서 스크립도 처음이었다. 아무튼 또 해냄.
현재는 후반 작업 중인데, 8분씩 1,2부로 나누어 1부의 1차 편집을 마친 상태이다. 가로로 편집해 놓은 이 미드폼을 다시 세로형 숏폼 몇 개로 재가공할 예정에 있다. 편집을 직접하는 게 사실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계속 하니 조금씩 는다. (그러나 여전히 손이 느리고 배운 걸 자꾸 까먹는다...) 다만 색보정과 사운드라는 기술적 영역은 정말 내가 범접 불가이다. 돈이 없어 어렵게 만들고 있으나, 아무튼 또 해낼 듯...
숏폼 시네마가 올라갈 시네마세로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가 아직 미미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보고 계신 것이 느껴져서 어마어마하게 큰 힘이 된다. 채널에 올리기전에 구독자님들께 미리 보여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생각하다 편하게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고, 시네마 세로의 계속되는 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뉴스레터'를 시작해볼까 한다. (브런치 연재는 끝나가지만, 뉴스레터 구독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을 듯 합니다!)
새로운 걸 배우면서 직접 하는 게 사실 힘에 부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엄청 활력을 주기도 한다. 요즘 연일 쏟아져 나오는 영화 시장의 어려움에 관한 뉴스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가도 내가 몰랐던 온라인 비즈니스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면 뭔가 희망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솔직히 아직은 어떻게 온라인을 통해 돈을 번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하는 창작자들에게 극장 유통 외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 지속적인 창작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것 같다는 생각. 아직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