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극장 산업은 이제 극소수의 영화만 선택받는 산업이 되어버려 나 같은 중소 제작사가 설 곳이 없어졌다. 나는 숏폼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라인에 유통시키는 탈출구를 찾으려 회사의 남은 600만 원을 20분 정도 분량의 숏폼 영화를 만드는 것에 전액 투자했다.
사실 '숏폼 영화, 숏폼 시네마'라는 단어는 내가 만들어서 혼자 쓰고 있는 중이다. 세로형 숏폼 드라마는 중국에서 먼저 유행하였는데, 중국 국가광파전시총국은 숏폼 웹드라마를 "에피소드 1개당 영상 길이가 수십 초에서 15분가량이며, 비교적 명확한 주제와 개요, 연속성 있고 완전한 스토리로 구성된 인터넷 영상 드라마"로 정의하고 있다. 중국은 틱톡에서 숏폼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고 숏폼 드라마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기존 영화, 드라마 시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극장으로 유통되는 영화 일만 하다 온라인 콘텐츠 유통에 다소 급작스럽게 뛰어들어, 만학도같이 하나씩 배우고 있는 나는 '석사' 시기를 겪고 있었다.
온라인 유통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고,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숏폼으로 만들겠다고 남은 600만 원을 올인한 건지, 가끔 저 명치끝부터 깊은 한숨이 나오던 때였다. 마침 한국에서도 숏폼 드라마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버선발로 달려가 그들과 미팅을 하였다. 그러나, 미팅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숏폼 드라마가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구조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저(低)'라는 것도 서로의 기준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는가? 한 껏 올라간 영화 제작비 기준으로 '저'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숏폼 드라마 플랫폼이 제안한 제작비는 제작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는 수준의 '저'였다. 기존의 제작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고객이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고, 어떻게 돈을 지불하느냐에 따라 콘텐츠의 성격이 바뀐다. 그리고 콘텐츠의 성격이 바뀌면, 제작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내가 영화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려고 했을 때 제일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2시간의 호흡감과 12시간, 16시간의 호흡감이 너무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 숏폼 드라마를 생각했을 때, 1분에서 1분 50초 분량의 50부작 2시간 분량이라면 호흡감이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곧 이 생각은 콘텐츠를 소비 시간의 개념으로만 생각한, 아주 아메바같은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장에 각을 잡고 들어가는 영화와 다르게 드라마는 집에서 편하게 보는 콘텐츠다. 숏폼 드라마는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드라마라와 유사하나, 스크롤 기능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스템이 개입된다. 도파민을 쓰게 하는 것이다. 도파민 시스템에 따라, 깊이가 있지 않더라도 더 자극적인, 더 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숏폼 드라마의 과제가 된다. 그리고, 숏폼 드라마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음화 결재라는 과금 시스템이다. 구독제인 OTT 드라마, 광고 수익 기반인 기존의 드라마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다.
오히려 숏폼 드라마 플랫폼은 다음 화를 위해 결재를 해야 하는 웹툰이나 웹소설, 혹은 게임의 과금 시스템과 더 유사하다. 그렇다면, 숏폼 플랫폼의 과금을 유도하는 방향으로의 콘텐츠 제작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핵심일 터. 그리고 이 것은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기-승의 구간에 충실히 서사를 하나씩 쌓고, 전-클라이맥스에 진실을 터트리고 결-마무리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왔던 영화 제작자들이 가장 어려워할 미션일지도 모르겠다.
숏폼 플랫폼에 맞는 이야기는 불과 2분 이내에 이야기 전개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다음 화가 궁금해져서 결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숏폼 플랫폼의 과금을 유도하기에 적합한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장소가 많이 바뀌고 다양한 컷들과 앵글이 필요한 씬들이 많아서 제시한 제작비에 맞지 않는 이야기인 것에는 확실했다. 새로운 플랫폼에 도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였지만 일단은 제작비를 도저히 맞추지 못할 것 같아서 숏폼 플랫폼과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시네마세로>다. <시네마세로> 유튜브 구독자 수가 오늘자로 아직 272명이지만 <시네마세로> 브랜드를 중심으로, 팔로워들의 핏에 맞게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공개되는 숏폼 시네마를 보고 시네마세로와 잘 맞을 것 같은 브랜드들과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그 브랜드를 위한 드라마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사이 아주 흥미로운 창작자들과도 연결되어 나는 현재 한 작가님과 책 발간을 준비 중에 있기도 하다. 온라인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되고,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처음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보니,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 같다. (물론, 아직 돈을 못 벌고 있고 월 천 수익은 어떻게 버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향 산업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면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시작한 거였는데 새로운 가능성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잔뜩 만나서, 엄청난 힘을 얻고 있는 기분이다. 같이 뭐라도 해보면, 뭐라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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