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질문_상처를 다루는 적절한 방법은?

안녕? 난 미카엘라라고 해.

by 한두권

아버지는 첫 번째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도 안되어 적당히 말도 잘 듣고, 자신의 자식 뒷바라지를 군소리 없이 할 상대를 찾았다. 도시의 삶에 지치고 외로웠던 시골 출신 처녀는 집과 차가 있던 나이 많은 남자의 아내가 되기로 했다. 첫 아이가 유산되고 둘째가 찾아와 배가 불러올 때 엄마는 알지 않았을까. 자신은 이 집안에서 진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머리를 밟히고 온몸을 발로 차일 때조차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락으로 도망치던 엄마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가족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공을 들인 딸은 눈을 뜨지 못했다. 병원을 수 십 군데 다니고서야 앞은 볼 수 있겠다는 답을 들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천에서 서울을 수도 없이 오갔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에 대한 죄의식인지 껄끄러움인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다 크도록 엄마는 두들겨 패도, 나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잔혹한 공간에 나를 내버려 두었다. 가끔은 나를 보며 웃기도 했다. 나는 도망치기는커녕 오줌을 쌀 정도로 겁을 먹어 우는 것밖엔 못했다. 결국 그 꼬마에서 마음은 한 뼘도 자라지 못한 채 몸만 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을 아버지의 큰 아들은 분노했다. 복수의 대상을 자신보다 힘이 센 아버지 대신 자신의 어머니 자리를 꿰찬 젊은 여자와 그녀의 자식으로 정했다. 배다른 동생의 저금통에 손을 대고, 아버지의 부재를 틈타 친구들과 집으로 들이닥쳐 새엄마를 협박하여 돈과 반지를 가져갔다. 그토록 경멸한 아버지를 꼭 닮았다. 젊은 아내를 시댁에 버리듯 두고 가끔 나타나 집을 때려 부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견디지 못한 아내는 어느 날 남편의 옷가지를 찢어발겨 놓고는 아이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그 아이가 나의 조카 J다. 큰 아들은 무슨 사고를 쳤는지 어느 밤 자기 핏줄을 달고 몰래 달아났다.


각자의 시간은 지났고, 나는 성인이 되어 도망치듯 독립을 했다. 그쯤 중학생 J는 전쟁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기 아빠의 방을 청소하지 않고, 밥을 안 차렸다는 이유로, 어쩌면 어떤 이유인지 모르는 이유로 맞았다. 방임과 폭력을 고스란히 겪으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보호자 노릇에 모범생까지 하느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안전핀이 고장 난 수류탄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무료급식지원서를 냈으며, 교복을 물려받기 위해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였다. 반장도 했다.


어느 비 오는 날. J가 가방하나를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은 부어있었다. 별말 없이 택시비를 지불하고, 집 열쇠를 복사해서 주었다. 동거기간은 짧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씩씩한 J는 다시 아빠에게로 돌아갔다. 그 후 잊을 만할 때 안부를 묻고, 현재 둘 중 누가 더 불행한지 거침없이 성토하고 서로의 부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우린 둘 다 꽤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다. 집안에서는 정실의 딸도 아닌 나와 망나니 같은 양아치 자식의 딸인 J, 무엇보다 하필이면 계집애들이 집안의 아들들이 못 간 서울 소재 대학에 먼저 합격했다는 비보에 적잖이 불쾌해했고, 그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나의 합격 소식을 듣고 고모는 시집이나 가지 돈 아깝게 공부는 뭐 하러 더 하냐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딸의 합격을 기념하여 소고기 대접을 하는 자리었다. 실로 교양 있는 태도가 아닌가.


9년 뒤 J의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 이름을 거론하며 걔도 좋은 대학 가 봐야 집안이나 버리고 별거 없더라며 너는 적당히 시집이나 가라 했단다. 우리는 아직도 그때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키득거린다. 우리야말로 흙탕물에 버려져서도 기적처럼 잘 큰 난 년들이다, 그렇게 잘나고 천박한 집안에서 물려받은 것은 성씨뿐. 애초에 그들과 격이 다르다며 똑같은 레퍼토리를 십수 년째 처음 하는 것처럼 반복 재생하며 재미있어한다.


나도 J도 각자의 방식으로 ‘둘째 마누라의 자식’, ‘망나니의 자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가족의 결핍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마흔이 다 되어 3년의 수험 생활 끝에 공무원이 되었다. J는 그로부터 1년 후 공무원이 되었다. 서로의 근황을 오랜만에 묻고는 하는 짓들이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며 한참을 웃었다. 다행히도 우린 호탕하게 잘 웃는 편이었다.




나는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버림받기 싫었다. 사람과 눈을 맞추기 어려웠다. 세상은 편견과 이기로 가득 차서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혼자가 편했다. 이대로 계속 세상이 나를 몰랐으면 했다. 혼자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꼈다. J는 연락을 할 때마다 친구들과 있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았다. 역시 반장 출신은 다른 걸까. 친구들의 해결사였다.


12년 연애 후 결혼했다. 내가 못나도 버림받지 않을 것 같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뜨겁지는 않지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평이한 관계이다. J는 뜨거운 연애를 즐겼다. 기간은 길지 못했다. 우리는 농담으로 이쯤 되면 J는 쓰레기 수집가인가 보다 했었다. 하지만 겁도 없이 곧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어쩌면 그때의 J는 무서웠던 게 아닐까. 쓰레기를 만나는 것보다 혼자로 남겨지는 것이 말이다. J의 청첩장을 받았던 날.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기로 했냐는 내 질문에 최악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골랐다고 했다. 겪어 보니 어차피 사람은 혼자이다. 그렇다면 얼굴이라도 뜯어먹고 살기로 했다며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다. 내 속엔 아직 상처받아 벌벌 떠는 꼬마만 있어서 그를 돌보느라 엄마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J는 결혼 후 아이를 낳았고, 둘째를 낳기 위해 벌써 몸을 만들고 있다. 사랑을 너무 못 받아서 사랑 주는 법을 배워 자신의 아이는 사랑받고 크도록 하고 싶단다. 극성 엄마는 못되어도 믿음직스러운 엄마는 될 수 있어 보인다.




둘이서 오랜만에 술을 한 잔 했던 날. 고단해도 잘 견디어 스스로를 돌 본 J에게 네가 자랑스럽고, 너의 모든 젊은 날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J는 전쟁 속에서도 본인을 방치하지 않고 탈출도 해보고 싸워도 본 전사였다. 나는 숨어만 있느라 제자리 같은데, J는 숨지 않고 나아갔다. 그에 J는 그나마 고모를 보고, 동지애로 따라서 꾸역꾸역 걸어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린 서로를 거울삼아 각자의 시간을 덜 외롭게 보냈고, 위안과 용기를 얻었으리라.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고, 헤어져 오는 길. 나는 안도감과 자랑스러움에 길바닥에서 펑펑 울었다.


우리는 비슷한 이유로 다르게 아프고, 같은 결핍을 다르게 해결해가고 있다. J는 J대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나는 나대로 과거의 나를 내 속도로 다시 잘 돌보고 있다. 조금 느리지만.

나의 동지 J가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만큼 운도 따라주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내 운도 조금 떼서 J에게 주면 좋겠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여전히 좋은 거울이 되고 싶다.

나는 자식도 없는데 J덕분에 할머니가 되었다. 좋은 할머니가 되어줘야지. 이왕이면 웃긴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모할머니보다는 이름으로, 이름이 힘들면 다른 말이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말이다.


“안녕? 나는 미카엘라라고 해. 너를 지갑으로 보살필 또 다른 보호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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