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새해 다짐이었던 것
새해가 되면서 다짐한 몇 가지가 있다. 일기를 쓰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미뤄왔던 글도 좀 써보고, 일주일에 책 한 권은 읽도록 해보자.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몸 관리를 위해 남몰래 필라테스도 알아보고. 유튜브는 제발 적당히 보기로 했다.
어떤 유튜브에서 봤는데(벌써 망했다.) 날짜가 박힌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면 의무감에서 한 줄이라도 채우게 된다기에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원래 일기를 쓰긴 했었다. 주로 화가 날 때 일기를 꺼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근거 없는 억측과 비난, 욕설을 휘갈기면서 울기도 하고 육성으로 욕도 나오고 그런다. 하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아무도 내 일기를 보지 않을 텐데 어쩐지 부끄럽고 허무해지기 일쑤였다. 작년 이맘때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고, 일기의 시작은 언제나 살인 예고였다. 펜으로 살인을 골백번은 했다. 그 사람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면 마음이 좀 풀렸을까. 방금 일기장을 꺼내 확인해 보니 3주 전 목요일이 마지막이다. 그날의 일기 마지막 문장은 “귀찮아죽겠네.”다. 올해도 일기는 망한 건가.
평소 인터넷 뉴스를 보지 않는다. 대충 손가락으로 화면을 올려보고는 다 봤다고 착각하고 맥락을 생각할 겨를 없이 쉽게 쓴 답글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내가 별로였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읽어보기로 했다. 요즘엔 신문 구독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야 한다. 종이신문 한 번 읽어보겠다고 검색을 몇 번이나 했는데 입력할 개인정보는 왜 그리 많은지 하마터면 구독을 포기할 뻔했다.
어렵게 시작한 신문 읽기는 두 번의 위기를 맞았다. 처음엔 집 앞에 신문을 놔두더니 언젠가부터 1층 우편함에 넣었다. 이 몰골로 엘리베이터에 타기는 싫었다. 남편은 더 몹쓸 꼴로 담배도 피우러 가고 심지어 이웃들과 담소도 나누는데 말이다. 다행히 남편 덕에 신문을 실내에서 받아 보게 되어 1차 위기는 잘 넘어갔다. 꽤 잘 지켰던 아침 신문 읽기는 고되게 이어진 약 2주의 야근과 음주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눈은 떴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왜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괴롭히는가, 유난이다, 신문 읽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나 피곤하기나 하지, 이러다가 결국 3일 연속 두 쪽도 채 읽지 못했다. 내가 읽는 신문은 금요일에 책을 소개하는 부록이 딸려온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읽고 싶은 책의 사진도 찍어보고 했는데 위기 4일째가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그 부록을 보기 위해 제시간에 일어나서 어찌어찌 넘어갔다.
신문 덕에 충동적으로 글쓰기 강의를 수강했다. 신문광고가 아직 먹히는 시대이다. 내가 그 증거다. 이 돈이면 휴대폰 게임 현질을 몇 번은 할 수 있다는 망설임은 잠깐 있었지만 꽤 성실하고 진지하게 임했다. 그렇다. 나는 글쓰기가 하고 싶었구나. 그 기간 동안의 일상도 왠지 모르게 즐거웠던 것 같다. 확신이 없는 이유는 재미와 별개로 사람들에게 내 글이 공개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난 일기 쓰기가 한계인 걸까? 또 그렇다고 하기엔 브런치가 뭔지도 모르는데 회원가입도 하고 덜컥 작가 승인이 나버렸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불편한 강박 비슷한 게 있어서 이끄는 대로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진짜 큰일 났다.
우리 동네에 필라테스 학원 중 한 군데에 엊그제 등록을 했다. 나의 모토는 ‘행복하고 건강한 돼지가 되자’이다. 다이어트는 웨딩사진 촬영 전에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마저도 웨딩촬영 끝나고 몸무게는 제자리를 찾았고, 결혼 당일 나의 모토대로 튼튼한 돼지가 된 내가 좋다고 웃고 앉아있었다. 그때 사진은 모조리 지웠다. 마지막 남은 엄마 방의 결혼식 앨범을 언젠가 몰래 없애고 말 것이다. 최근 몸의 비대칭이 더욱 심해서 골반이 너무 아프기도 했고, 무릎도 시큰거린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행복한 돼지가 되려면 일단 건강이 있어야 한다.
“아니 왜 레깅스를 입어야 하나요?”
“그래야 근육의 움직임을 잘 볼 수 있어요. 강요는 아닙니다.”
고민은 잠시다. 뭐든지 장비 빨이라고 했다. 드디어 오늘 주문한 빅 사이즈 레깅스가 도착했고 첫 수업까지 이제 3일이 남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깔끔하게 반품하고 수업을 취소할 수 있다. 아니 잠깐. 생각해 보니 이미 레깅스의 상표를 가위로 잘랐으니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책을 읽고 서평도 쓰고 싶었는데 3월부터 읽기 시작한 책 한 권이 계속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분명 재미있는데 한쪽 읽기가 험난하여 몇 번 다른 책에 찔끔 손을 댔다가 또 내용이 궁금하여 돌아오곤 했다. 저번 주에야 간신히 완독 했다. 일주일에 한 권을 읽겠다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내 주제를 알고 이 목표는 수정하기로 한다. 1년에 20권은 읽어보자. 나도 현생이 있으니까.
호기심은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시작은 한다. 그리고 벅찬 기대로 장비를 준비한다. 예를 들면 유화를 배워보겠다고 이젤을, 영어를 배워보겠다고 영어책을 장만했다. 이번에는 독서대와 레깅스, 그리고 신문 구독료 월 이만 원을 준비했다. 그전의 나라면 다음 순서는 빠른 포기와 중고 판매 사이트에 로그인하기이지만, 이번만큼은 일 년은 해보자. 아직 6개월이나 남았지만 어쨌든 다짐하는 건 무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