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_폭력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았나.

웃음과 오줌싸개의 상관관계

by 한두권

이모네 우동가게 옆에는 작은 슈퍼가 있었다. 성탄절이 지난 지 꽤 되었지만 트리는 반짝거렸고, 내복만 입고 입으로 김밥을 욱여넣으며 내 눈은 트리에 가있었다. 의자에는 신문지가 깔려있었다. 이모는 김밥만 던지듯 주고는 우리 집으로 달려갔다. 아마 새벽이 되면 이모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엄마는 나를 안고 주문을 외듯 말할 것이다. ‘우리 딸만 아니면 엄마는 벌써 도망갔을 거야.’ 어렸을 때는 안도했었다. 엄마는 날 버리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고 안도감을 주었던 그 주문은 폐부 깊숙이 박혀 못이 되어 박히고는 했다. 내가 엄마를 주저앉힌 장본인이라는 죄책감에 초등학생 때였나? 어느 날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아빠가 케이크를 사 왔다. 내 년에는 잘 살아 보자며. 나는 물을 아빠는 술을 마셨다. 엄마는 잔을 들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날 새벽 아빠는 허리띠를 풀었다. 나는 벽에 붙어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오줌을 쌌다. 엄마가 쓰러졌고 아빠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나도 아빠를 보며 웃었다. 웃지 않으면 나도 저 허리띠에 죽을지도 모른다. 생존이었다. 윤리나 정의 같은 건 없다. 오로지 살고 싶었다.


무기력과 무능력은 사람을 서서히 무너트린다. 머리가 크면서 같은 상황에서 오줌은 싸지 않았지만, 아빠와 마주쳤을 때 웃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였는데,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이 흘러 몇 번이나 연습을 했음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감정만 떠오르는데 아빠에 대한 경멸, 엄마에 대한 원망, 나에 대한 혐오 정도이다. 정신교육을 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본인은 술과 도박, 여자에 미쳤던 아빠를 경멸했지만, 따뜻한 지붕을 벗어날 용기는 없었다. 도망가지 않고 버티면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너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날 위해서 참아달라고 한 적 없는데 나를 왜 미워하게 만들까.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숨이 막혔고, 누가 나 낳아달라고 했냐며 소리를 질렀다. 안타깝게도 문을 쾅 닫고 들어 갈 내 방은 없었다. 무거운 공기를 느끼며 같은 공간에서 등 돌리고 각자의 이유로 울면서도 엄마가 떠나지 말기를 기도했다.


엄마는 직접적으로 말한 적 없지만 나는 알고 있었던 비밀이 하나 있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을 휘둘렀고, 너무 건강하게 잘 놀던 나는 태동을 멈추고, 세상에 나자마자 온 갓 검사 후 뇌에 손상을 입어 눈도 뜨지 못하고 반신불수가 될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친척들은 원색적인 말을 섞어가며 엄마를 비난했지만 아빠는 침묵했었다. 그때 엄마는 나를 안고 미친 사람처럼 다니며 방법을 찾았다.


차마 고백할 수 없는 다른 몇 가지와 앞에서 적은 것 외에는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꽤 총명했다고 하는데 성인이 되어보니 그건 아니었던 것 같고, 지독한 자기혐오와 열등감, 패배감만 남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울 앞에는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인 쓸모없는 아이가 서있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살고 싶었다. 최대한 부모님과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니, 사실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흐릿한 그날들 중 하루를 떠올린다. 아빠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나는 오줌을 싸며 아빠에게 웃음으로 답한다. 그날의 나를 나는 수도 없이 죽인다. 죽이고 죽여도 과거의 나는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진짜 가해자는 내가 아니었을까. 폭력을 방관하고, 심지어 조용히 동조하였으며,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였다.


원칙주의자이고, 약속을 잘 지킨다. 양심에 찔리는 일은 안 하려고 노력한다. 차별적인 말이나 행동에 예민하고 폭력을 목격하면 참지 않는다. 남이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들추거나 캐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것들이다. 청년기를 지나 지금의 내가 되어서 그래도 하나 잘 해낸 것은 이런 다짐이 생긴 것이다. 원래는 강박 같은 것이었는데, 버릴 수 없다면 다듬자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잘 가꾸고 있다.


아직 오줌싸개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웃을 때마다 속으로 찔린다. 그러면서도 난처해도 억울해도 잘 웃는 편이다. 그때 그 어린 꼬마는 웃어야 안전해진다는 본능 외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그런 채로 자라 내가 되었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많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온 결과겠지. 이중에 오줌싸개의 잘못은 몇 가지나 될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아빠를 원망하고, 어느 날은 엄마를 원망한다. 하지만 나를 가장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릴 때는 원망이 나를 향할 때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고, 이왕이면 잘 살고 싶다.


나는 자주 크게 웃는 내가 마음에 들지만 동시에 못마땅하다. 웃다가 찾은 거울 속의 나는 오줌싸개인가. 아닌가. 그 의심이 드는 순간 알아챈다. 오줌싸개다. 하지만 웃음을 거둘 타이밍은 이미 지난 지 오래다. 기억도 잘 안나는 그 몇 장면들이 이토록 긴 인생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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