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탈출 넘버원
위기탈출 넘버원
인생은 무릎 같은 거야
십여 년간 사랑받았던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예능 방송이 있었다.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의 예방법을 알려주는 유익한 방송이었는데, 방송날이 되면 실시간 검색어가 그날의 사건으로 도배되곤 했다. 그 방송을 보고 있자면 세상엔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장난감을 입에 넣는 것도 안 되고, 모래를 만진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도 안 되고, 더운 날에 찬 음식을 먹는 것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물놀이를 하는 것도, 밥을 먹고 바로 눕는 것도, 의자 위에서 가부좌하고 앉는 것도 안 된다고 했다.
그에 반해 죽기는 또 너무 쉬웠다. 우리는 여름에 선글라스를 벗다가 계단을 못 봐서 죽고, 냉면을 먹다가 죽고, 치즈와 피클을 함께 먹어서 죽고, 후드 집업 쓰고 길 건너다 죽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그 방송은 매주 우리에게 죽음이란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다고 열심히도 말했다.
내게도 죽음(을 맞이할 뻔한 경험)은 멀리 있지 않았다. 8살쯤인가, 한겨울 꽝꽝 얼은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다가 살짝 녹은 가장자리에 빠져버렸다. 저수지는 물속 깊이 얼지 않아서 나는 얼음으로 덮인 물속에서 둥둥 떠다녔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없었다. 물속에서의 기억은 삭제되어 아직도 영문을 모르지만, 나는 어찌 용케 빠져나와 낚시를 하던 어느 가족에게 구출됐다. 하루는 동네 오빠에게 자전거를 배웠는데, 그 자전거가 하필이면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깜빡한 채 정체모를 자신감만으로 내리막길을 시도했고, 한참 달리던 중간쯤에서야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전거는 내리막길 끝 차도를 향해 점점 가속됐고 나는 핸들을 최대한 틀어 자전거를 넘어트린 후 그대로 같이 넘어졌다. 당시 대부분의 도로는 비포장이었던 탓에 내 몸은 온갖 자갈에 긁히고 찢겼다. 할머니와 이모할아버지 댁에 가던 길에는 길고 긴 수원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중심을 잃는 바람에 우리는 끝없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러야 했다.
위기탈출 넘버원이 이승탈출 넘버원이라 불리기 시작할 때, 사실은 나도 '뭐야, 뭘 해도 죽네. 그냥 숨만 쉬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코털을 뽑다가도 죽을 수 있는 세상인데, 나는 진작에 이 세상에 없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가끔은 하늘에서 누가 나를 돕고 있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치지 않기 위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것은 곧 생명이 가진 특권을 무시하는 것과도 같으니.
어쩌면 우리는 죽기/다치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선택에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쉽게 뒤따르기 마련이니까. 숨만 쉬어도 미세먼지 때문에 기관지에 문제가 생기는 세상에 환경을 위해 음식을 가려먹다 되려 영양 불균형이 생기고, 성공하려 공부하다 목 디스크가 생기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다 허리를 다치고, 서서 일하다 무릎이 나가고, 앉아서 일하다 심장마비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예상치 못한 사고의 대표적인 예로 무릎을 빼놓을 수 없다. 동양의 대표 문화와도 같은 가부좌가 무릎에 최악이라기에 의자에 앉았더니, 갈 길 잃은 발 끝을 발걸이에 얹는 게 또 무릎을 나가게 한단다. 무릎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무릎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이기 위해 살을 빼라고 했다. 나름 생각해서 뛰지 않고 걸었더니만, 상체 무게 때문에 무릎에 무리가 가서 안 좋으니 근력 운동을 하란다. 그래서 가장 대표적인 스쿼트를 며칠 했는데 무릎 안 좋은 사람들은 피하는 게 좋다네. 옘병. 그렇다면 자전거는 어떤가 했더니 그 또한 슬개골 통증을 유발한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결국 무릎은 그냥 얌전히 늙기만 해도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로 인생은 마치 무릎 같다. 무언가를 하든, 안 하든. 빠르게 살든, 느리게 살든 몸과 마음은 언제 어떻게 다칠지 모르고 끝끝내 아프고 만다. 조금 덜 열심히 산다면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지만, 알턱이 없는지라. 별짓을 다 해도 결국 나가고야 마는 무릎이라면, 어차피 다칠 인생이라면, 노화로 인한 호상을 곱게 기다리느니 좋은 것 하나라도 더 보여주다 죽이는 게 불쌍한 무릎과 인생의 주인으로서 도리가 아닐까, 싶다. 무릎이 나가기 위해 존재하듯, 위기는 보란 듯이 탈출해야 제맛이니까. 나는 오늘도 안쓰러운 무릎을 달래며 수많은 위기 속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