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경 Nov 09. 2019

나의 꿈은 직장인입니다.

원숭이들의 GO BACK


원숭이들의 GO BACK

나의 꿈은 직장인입니다.




일출몰의 반복이 서둘러 내 방의 달력을 넘긴다. 억지로 26번째 미역국을 삼킨다. (중략) 하루를 밤을 새우면 이틀은 죽어, 이틀을 밤새면 나는 반 죽어. (중략) 세월이란 독약을 마신 후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바뀌어, 내 look도 바뀌어, 욕심도 살쪄. 오토바이를 팔고 자동차를 사고파. 시끄러운 클럽 보단 산에 가고파. 세 들어 사는 것도 지겨워 집을 사고파. 나 자리 잡고파 이제 출세하고파. 하나 둘 나이가 먹어 가니까 이상하게 시간이 점점 빨리 가 나도 이제 어른이야. <다이나믹 듀오 '고백(GO BACK)' 중>


90년대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 다이나믹듀오의 고백이란 노래다. 학창 시절 많은 이들의 미니홈피에서 흘러나오던 저 노래가 올해로 무려 발매 14년이나 지났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힙합을 참 좋아했다. 다이나믹듀오, mc스나이퍼, 배치기, 드렁큰타이거, 리쌍, 아웃사이더 등 나의 아이돌과 같던 뮤지션들의 음악을 1GB가 겨우 넘는 MP3에 고이 넣어 하루 종일 듣곤 했다.


사실 요즘에는 어떤 노래를 듣건, 가사를 곱씹어보는 일이 많지 않다. 누군가의 소중한 창작물에 대해 예의가 아닐 수는 있겠으나, 노래 자체에 가사가 없기도 하고 주로 출퇴근길에서 무언가를 읽으면서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아 주도권을 '읽는 행위'에 곧잘 빼앗기곤 한다.


반면 '라떼는 말이야' 그렇지 않았다. 지금처럼 화면에 가사를 바로바로 띄워주는 건 당시 기술로는 어려운 일이었고 따라서 그 시절 우리는 수업시간 교복 블라우스 안으로 이어폰 줄을 넣은 다음, 머리카락으로 헤드를 가려가며 선생님 몰래 필사 아닌 필사를 하곤 했다. 또한 방과 후 할 수 있는 유흥이라곤 노래방이나 오락실이 전부였으니 하교 후에는 주로 노래방으로 달려가 마이크 쟁탈전을 벌였는데, 덕분에 화면에 띄워진 궁서체의 노래 가사를 눈으로 보고, 입으로 부르며 두 번 세 번 되새길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노래를 듣고, 필사까지 하는 노력에 비해 가사 자체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는 꽤 어려웠다. 14살이 받아들이기에 래퍼들은 늘 화가 나있었고, 세상의 풍파는 그들이 다 짊어진 듯했다.(물론 그것이 '힙'이었고 멋이었지만) 그런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다이나믹듀오의 고백이란 노래였다. 당시엔 그저 '미역국을 왜 억지로 삼키지? 맛있는데' 하고 엉뚱한 호기심을 자극하던 노래였는데, 이제 와서 다시 들어보니 그 시절 다듀의 늦은 20대 고백은 14년이라는 시간차가 무색하게 현재 나의 상황과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가사 속 다듀의 나이가 현재의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리다는 것 또한 새삼 놀라울 부분 중 하나였다.


다이나믹듀오 2집 Double Dynamite



오래도록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나는 어느새 그들의 가사처럼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 탓일까, 욕심이 살찐 탓인가. 이제는 소주보단 보드카가 좋고, 다양한 가짓수의 뷔페보단 양이 적어도 맛있는 음식이 좋다. 먼저 자리를 뜨는 친구를 배신자라 욕하던 나는 어떻게 서든 막차를 타고 귀가하고자 꼼수를 부리는 입장이 되었고, 예정 없던 돈이 생기면 비행기표가 아닌 월세집 보증금 올릴 생각을(생각에 그쳐서 문제지만) 한다. 타고난 팔자에 순응하며 살고 있기에 여전히 떠나와있지만, 나는 늘 다시 돌아갈 그곳에서의 안정된 삶을 그린다. 요즘은 심심하면 부동산 사이트도 서성여보고, 괜히 행복주택 공고 날짜도 쓱 한 번 보고, 전세대출은 어느 조건이 만족되어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도 알아본다. 50만 원으로 한 달 반을 떠돌던 과거의 내가 본다면 가히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그래도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당당할 수 있지.'

'고모, 난 자본주의한테 이끌려 다니기 싫어.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 아냐?'


라고 호기롭게 외치던 불과 몇 년 전의 현동경은 세계일주를 마치고 빈털터리가 되어 주머니에 커피값 한 푼이 없어본 후로 세월의 독약을 한 사발 마셔버렸나 보다. 이제 커피 한 잔 할 돈이 없어서 애꿎은 은행 어플만 노려보는 일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로 곧 다가올 나의 30대 꿈은 직장인이다. 다들 퇴사를 하라느니 나대로 살라느니 말이 많지만, 나는 서점 속 무수한 책 제목들과는 반대로 지난 10년간 세 번의 퇴사와 방랑, 자유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터라. 가진 걸 내려놓는 게 유행인 요즘, 나는 청개구리처럼 이제야 책임감을 끌어안아 볼 마음이 조금 생겼다. 그것이 나에게 안락한 지옥을 선물할지 불편한 천국을 선물할지는 모르겠으나, 띠 동값 두 남자의 스물여섯과는 다르게 생일날 미역국만큼은 늘 맛이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무릎 같은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