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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달다 Jan 18. 2023

나처럼 지쳐 있는 당신에게

그림책 <작은 눈덩이의 꿈>을 읽고

 그림책을 읽다 보면 머물게 되는 장면이 있다.

 내 속에 무언가가 쿨럭하고 기침하는 것 같기도 한 순간.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대게 내 모습을 발견할 때이다. 숨기고 싶거나 외면하고 싶은, 혹은 나조차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내 모습 말이다.

 

 그림책 <작은 눈덩이의 꿈>에서 불편한 나를 만났다. 예쁘고 귀여운 그림과 글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작은 눈덩이가 물었어요.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커요?"

 큰 눈덩이가 웃으며 대답했어요.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렀기 때문이지."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렀기 때문이라는 큰 눈덩이의 말에 작은 눈덩이도 큰 눈덩이처럼 구르기로 마음먹고 데굴데굴 굴러간다. 아주 크고 둥근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나무나 비탈길, 바위 골짜기가 막아선다 해도 용기 내어 꾸준히 나아간다면 결국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순하고 따뜻한 이야기. 자신의 꿈을 닮아가게 된다는 희망의 이야기. 작고 순전한 믿음 하나 마음에 품고 있다면 지금의 장애물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건네는 응원 같은 이야기.

분명 그림책다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모난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구르라는 큰 눈덩이의 말에 뾰족뾰족 가시가 돋는다.

  멈출 수도 있지. 왜 계속 굴러야 해? 힘들고 지치면 당연히 멈춰야지. 꾸역꾸역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나? 왜 쉬면 안 돼? 왜? 왜? 왜?

  혼자서 씩씩대다가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나 머쓱해진다.


  아마도 내가 지금 멈춰있기 때문인가 보다.


  바위 골짜기에서 만난 부서진 큰 눈덩이처럼 말이다.

 부서진 큰 눈덩이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어요.

 "나도 한때는 단단하고 동그래서 잘 굴렀는데......

  어차피 눈덩이는 부서지기 마련이니까,

  날 그냥 내버려 두렴."


  부서진 큰 눈덩이도 한때는 작은 눈덩이처럼 크고 둥근 눈덩이가 되고 싶어서 참 열심히 굴렀을 것이다. 그러다 바위에 부딪치고 다른 장애물을 맞닥뜨리면서 혹은 스스로가 장애물이 되어 부서지고 멈춰진 게 아닐까?

  열심히 굴렀던 만큼 멈춰진 시간도 길어졌을 것이다. 다시 굴러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더 이상 굴러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굴러봤자 어차피 눈덩이는 부서지기 마련이라는 허무주의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는 자신을 합리화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테니까. 한때는 단단하고 동그래서 잘 굴렀던 자신이 부서져서 더 이상 구를 수 없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마침표를 그렇게 찍어야 더 이상 헛된 희망으로 괴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도 행복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해봤자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들고,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도 없으니 그림도 글도 다 소용없는 것 같고, 갈수록 하고 싶은 건 없어지고 하기 싫은 것만 자꾸 늘어나는 내가 참 한심하다.

  그동안 많이 소진되어서 다시 에너지가 차오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다그치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자고 마음먹었지만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러다 영영 주저앉아 버리는 건 아닐까, 나도 한때는 하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변하지 않는 미운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

 

  동시에 날 그냥 내버려두라는 부서진 큰 눈덩이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힘을 내야 하는 것은 자신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만큼 지치고 힘이 드니까, 그리고 왜 다시 굴러야 하는지 이유를 잊어버렸으니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헷갈리니까...... 옆에서 건네는 손길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은 눈덩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맞아. 내 힘으로 굴러야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알 수 있어."


  다시 나에게 물어본다.   

  이대로의 나도 괜찮아?

  

  내가 대답한다.

  분명한 건 지금 나는 지쳐있다는 거야. 이런 나도 나라는 걸 인정해. 하지만 만족하지는 않아. 그러니 언젠가는 다시 굴러가고 싶어. 내 속도대로 데굴데굴 굴러가서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알고 싶어. 굴러가고 싶은 마음은 꼭 기억할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멈춤이 아니니까. 지금은 그냥 나에게 시간을 좀 더 주고 싶어. 쉬어야 할 때 푹 쉬고 나면 살랑살랑 봄이 오듯이 나도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지 않겠어. 나는 나를 다정하게 믿어주고 싶어.

작은 눈덩이에게 까마귀가 그러했듯이.......


  그러니 지쳐있는 당신도 쉬어야 할 때 푹 쉴 수 있도록 자신을 다정하게 믿어주면 좋겠다.

  살랑살랑 봄이 오면 당신도 나도 기지개 한번 크게 켜고 다시 제 속도대로 데굴데굴 굴러가면 좋겠다. 그러다 언젠가는 정말 가고 싶은 곳에 기어이 닿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우리는 충분히 그래도 된다.


  그림책 <작은 눈덩이의 꿈>은 이재경이 그리고 썼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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