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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하나 추가

by 풍경달다

학교 다닐 때 수학 문제 풀기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섭고 도망치고 싶었던 게 바로 100미터 달리기였다.

출발선에 섰을 때의 순간이 너무 무서웠고,

앞서가는 아이의 등이 멀어질수록 외로웠고,

항상 20초가 넘는 결과에 챙피했고,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좀 억울했다.


달리기만 느린 게 아니었다.

밥 먹는 것도 느리고,

계산하고 읽고 쓰는 것도 느리고,

새로운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도 느리고,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엄청 느리고,

무슨 일이든 결정하는 것도 엄청엄청 느리다.


갈수록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사람이

느림보는 버겁고 무섭고, 외롭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까먹지만 않는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당신에게 가는 길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 길 끝에서 당신이 나를 기다려 준다면, 느려도 괜찮다고 응원해준다면

나는 힘들어도 도망가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끝까지 느릿느릿 내 길을 갈 수 있을 테니까

결국엔 웃으며 당신 곁에 도착할 테니까


여기 느려도 제 길을 가는 달팽이 하나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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