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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유 May 09. 2016

가볍게, 조금은 가볍게

얼마 만에 책상 앞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집을 조금 정리하고

마음도 조금 치워보고

마음의 준비 운동도 좀 해보고,

그러고 다시 책상 앞에 앉으니 5월하고도 어느새 9일.


아주 잠시만 바빠져도

아주 조금만 게을러져도

보름 쯤이 훌쩍 지나가버리니,

시간은, 세월은 얼마나 빠른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조금 붙잡고

괜찮아, 느긋하게.


고새 수안이는 말이 부쩍 늘었다.

다행인 것은 수안의 말들을 내게 카톡으로 보내두었다는 것이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좋아해"

라던 수안이는

"수안이도 바나나를 좋아해"

라며 조사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알게 됐다.


"아빠 잘 잤어?" 하고선

"수안이도 잘 잤어"라며

조사 '도'의 쓰임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 주격 조사 '가'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몰라 모든 단어 뒤에 '가'를 붙이던 수안이가

이제 제법 '은 는 이 가' 주격 조사를 구분하고

'도'같은 보조사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한 아기가 스스로 언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신기하다.


4월 26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하원시간이 돼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현관을 나오다 말고

친구 지우의 신발을 신발장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아직은 모를 나이.

하지만 나는 아이의 마음 속에서 배려를 본다.

엄마를 기다리는 친구를 위한 마음.

수안이가 그렇게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가슴을 가진 아이로 자라나길,



4월 27일,

잠을 자다가 잠꼬대를 하는데 내용인 즉슨,

"치카치카 치카치카 이를 닦자 아~아~"

노래를 하더니 갑자기 정색하며

"야!!!!!!!"

하더니 이내

"치즈 치즈 치즈"


오후엔 플레이도우를 하며 놀았다.

원숭이를 만들어줬더니

바나나를 만들어 달란다

바나나를 만들어줬더니

접시를 달란다.

접시를 줬더니

바나나를 접시 위에 담아

원숭이에게 주며,


"원숭이야 바나나 먹어라~"


수안이는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먹여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갖고 있나보다 ㅎ


4월 28일,

우리 가족은 괌에 있었다.

여행 전부터 수안에게 비행기를 타고 바다에 갈거라고 얘기해줬더니

"와~좋다. 와~좋다. 와~신난다!!"

좋다는 것이, 신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제 수안이는 어린이 티가 제법 난다.


여행 내내


"와~바다다!!! 와 신난다~!!"

"너무 좋아 너무 재밌어"


언제나 네게 신나는 일, 재밌는 일이 가득하길, 엄마는 기도해 수안아.



5월 6일,

여행의 피로로 모두가 널부러져 있는 휴일 아침

수안이가 내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이 사과 먹을까?"

ㅋㅋㅋㅋ

내가 너무 웃겨서

"그래~"

그러자

"엄마랑 아빠랑 수안이랑 사과 먹자!"


세수를 해주고 로션을 발라줬다.

로션 바르기를 좋아하는 수안이가

"로션 더 줘!"

하길래 내가

"로션 없는데~" 하자

수안이가 나를 정면으로 보며 하는 말

"있잖아~~~~"

ㅋㅋㅋㅋ이제 거짓말을 진짜 못하겠다 ㅎㅎ


국물을 좋아하는 수안이

내가 아침에 국을 안 끓여

반찬만 주자

"엄마 국물 주세요"

"국물? 오늘은 국물이 없는데~"

하자 수안이가 나를 보더니

"어뜩해??"

ㅋㅋㅋㅋㅋ 그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나를 걱정하듯이, 어떡하냐며..ㅋㅋ


산타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수안이는

산타할아버지가 항상 수안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기억하는지

틈만 나면 산타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한다.

밥을 먹다가다

"산타하부지, 수안이 감자먹고 고기먹고 밥도 먹고, 수안이 맘마 잘 먹어요~~"

ㅋㅋㅋㅋ


잠들기 전 몇번 산타할아버지 얘기를 해줬더니

그게 재미있었는지

밤마다 산타할아버지 얘기를 해달란다.

내가 귀찮기도 해

"오늘은 수안이가 산타할아버지 얘기해봐~"

하자, 심호흡을 하더니

"옛날에 옛날에 산타 하부지가 살았어요~"

하더니

"맘마를 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

그 이후엔 더 진전이 어려운지

"엄마가 산타하부지 얘기 해!!!"

하고 명령했다.


그저께는 외출을 하는데

장갑을 달란다. 나는 귀를 의심하며 잠바를 줬다.

그러자 수안이가 손을 흔들며

"장갑! 자앙 가압!"

설마, 하며 장갑을 줬더니 너무 좋아하며 손에 끼었다.

결국 그 더운 봄날 빨간 털장갑을 끼고 국립중앙박물관을 누볐다

ㅋㅋㅋㅋㅋ



또,

또,

또,

수많은 수안이의 말들

수안이의 이야기들.


매일 매일 너를 만날 수 있어

엄마는 너무 행복해

이토록 행복한,

이토록 감사한,

오늘.

조금은 가볍게,

다시 출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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