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 >
‘고모는 요가 배우러 갔다는 말에 아빠는 여자들은 뭘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했고 이유를 묻자 엄마는 인생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것 아닐까 '하고 대답하는 장면을 읽을 때였다.
문득, 어젯밤 걷기 운동을 대신해 상가가 많은 번화한 거리로 가 욕실 용품을 사 온 게 생각이 났다. 변기 청소 솔, 비누 거치대, 벽에 붙이는 훅 몇 가지. 오래된 것들을 버리고 새것을 붙이고, 걸고, 놓아두고서는 여러 종류의 제품들 중에 내가 선택한 것들이 최선이었다 생각하며 잠시 뿌듯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여전히 좁고 오래된 곰팡이는 닦아도 닦아도 사라지지 않는 욕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그곳에 서서 새것을 바라봤던 그 순간에도 인생이 더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 작게나마 틀림없이 들었다.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에 익숙해 진지 오래.
많은 책을 통해 남의 지식을, 경험을 가져보려 애쓰고 뉴스를, 정치를, 사회를 이해하려 하지만 역시나 온전히 가져지는 것도, 이해되는 것도 별로 없다. 몇 천 원짜리 플라스틱 용품으로 벽에 붙이고 걸고 하는 행위가 훨씬 삶이 풍부해지는 느낌이었다면 오버인가 싶지만 사실인걸.
몇 해 전 몸에 붉은 반점 같은 게 한두 개 생기더니 가렵다가, 아토피 같다가 그대로 자국이 되어 남아버렸다. 그러다 가끔 또 가렵고 붉어지고. 겨드랑이와 가슴의 경계쯤 어디라 겁도 났다가... 그랬는데 면역성, 성인 아토피 뭐 그런 언저리에서 자가 진단이 헤매다 멈췄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보디로션을 바르다가 건조한 것에 생각이 닿았고 매일 씻으니 물로 씻겨 나가는 씻는 제품에 대해서는 향 외에는 고려 사항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세안용 제품이나 샴푸에 신경을 쓰는 것에 비하면 좀 미안할 정도로 몸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해 좀 좋은 것으로 몸을 씻어야겠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보디워시를 비누로 바꾸고 비누 중에서도 좋은 성분으로 만드는 것을 고려했다. 그렇게 바꾼 지 아직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전보다 씻는 것에 더 세심함을 기울이고 몸의 변화에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 건조함에서 오는 가려움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도 같지만 아직은 기분 탓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다.
같은 맥락이다. 기껏해야 내 삶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범위는 이 정도.
사는 집을 바꾼다던가 차를 산다던가 긴 여행을 간다던가 결혼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니 엄두를 낸 적도 없다. 그렇지만 매일 7-8킬로를 걷는다던가 사용했던 보디워시보다 비싼 비누를 쓴다던가 오래된 욕실 제품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꾼다던가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이 주는 만족도는 삶을 운운하며 꼬라지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정도로도 인생이 나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소박한 것인가 또 생각은 꼬리를 물지만,
괜찮다. 좋다. 만족해.
-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에 대해 새삼 깨닫고 받아들이기로 했던 밤.
인생의 길에 한 걸음 뗀 것을 넘어 계단 하나 딛고 올라선 삶에 들어섰다고 감히 고백하고 싶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