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손님이 반가운 것은 아니에요.

my stance.

by sepH

상식, 기준, 적당함, 애매모호, 규칙... 이런 단어들을 씻으면서 떠 올렸다.

이제 10년 차에 접어드는데도 카페를 운영하는 것에 있어 곤란함을 종종 겪는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지혜도 생겨 여러 가지 돌발 상황에도 처음보다 능숙히 처리가 된다지만 그것에 자신할 수는 없다. 상황도 그 상황을 만드는 사람도 가지각색이므로.

카페에 머무는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카페를 오픈하기 전에는 나도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한없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때의 나 같은 지금의 손님들을 이해하려고 혹은 인정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지난해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손님이 너무 들지 않아 이러다 정말 일이 날 것 같았음에서 모든 손님이 반가웠던 것은 아니었다. 오픈 즈음에 와서 마감한다 말해야 나가는 손님을 만난 것이 그때다. 지금보다 손님이 더 드문 시절부터도 그런 손님은 있었다. 그렇지만 이 손님은 최고였다. 가끔 와서 5시간 이상을 정말! 정말 열심히 공부만 하고 간 적이 몇 번 있었기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날은 친구와 와서 작은 테이블을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공부를 하다 식사를 대신하는 케이크 하나를 시켜 창가의 다른 테이블에서 나눠먹고 또 각자의 자리로 가 공부를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그 손님 덕분에 카페의 시간제한을 두었다. 노트북과 책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3-40분 자리를 비우는가 싶더니 식사를 하고 온 손님도 있었다. 그래서 노트북을 들고 두꺼운 책을 들고 오는 손님들에게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그 손님의 일도 앞서 말한 손님과 비슷한 시기에 격은 일이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그런 손님들은 종종 있었다. 시간제한이 생겼다 하여 알람 맞추듯이 나가라 할 수가 없었다. 책가방과 노트북을 들고 앉는 손님들께는 미리 안내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마음이 편했다고 할 수 없다. 음료를 더 시키라는 의미가 아니었기에 제한 시간즈음에 다시 메뉴를 주문하려는 손님에게 안내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 손님이 오픈런에 입장, 마감시간에 퇴장하는 손님이었는데 약간의 신경전 같은 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이후 그 손님을 보지는 못했다. 편하게 공부하시고 싶으면 더 크고 쾌적한 카페를 이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내문을 붙이는 것에도 처음에는 다 기껍지 않았다. 점점 다양한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아예 문 앞에 붙여 놓았지만 그 마저도 읽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점점 텍스트가 많아져가고 있는 어느 날 구구절절 설명하는 문구를 다 지웠다. 요점만 순서를 붙여 적고 양해를 구한다 덧붙였다. 읽지 않으니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붙여놓은 것이 선 안내가 되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손님을 이해시키는데 편리한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덕분에 경고 문구들은 넘쳐 났었다. 그 사이에 빌붙어 내 요구사항들도 나열되었다. 외부음식은 반입이 안된다. 4인 이상의 손님은 받지 않겠다.(이것도 ‘모시지 않겠다’로 적었다.)는 문 앞에 빌붙여 끼워 넣었고 카운터에는 테이블 간격과 천고를 운운하며 소리를 낮춰주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모든 텍스트들은 손님을 앞서 나부터가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조금 살을 붙여 미쳐버릴 것 같은 날이 있었다.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런 것이었겠지만 어떤 날은 잔인하게 기가 빨려 정신에 피가 말라붙은 것 같았다.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시기도 길게 지나갔다. 이제 다 지나갔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은 다 지나갈 수 없음을, 사람의 일임을 알아서 이다.

외부음식은 어디까지가 외부음식인가. 음료와 케이크를 파는 카페에서는 다른 카페의 음료도 편의점의 음료수도, 계란도, 삼각김밥도, 떡집의 떡도, 빵집의 빵도, 우리 집의 과일도, 고구마도 옥수수도..... 하아... 어디까지 범위를 두어야 하나... 음료를 시켰으니 예외를 둬야하고 케이크를 시켰으니 예외를 둬야 하나... 아이가 밥을 못 먹었으니 예외를 둬야 하고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니 닭가슴살을 데워줘야 하나.. 그런 모든 예외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코로나로 테이블을 띄워야 하는 시기에도 작은 카페에서는 다른 테이블의 소리가 낱낱이 들린다. 이어폰 없이 동영상을 일행과 공유하고, 영상통화를 하는 것. 시간의 길이에 따라 잠깐은 허용?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 길이는 어느 만큼이 적당한가. 큰소리의 통화로 손님 간의 싸움을 목격한 적도 있고 떠드는 소리에 조용히 해달라는 손님 간의 제재를 목격한 적도 있다. 그럴 때는 미리 그 상황을 막아주지 못한 주인의 허울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래서 미리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손님 테이블로 가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달라고 자세를 한껏 낮춘다. 자세를 낮추는 행동에는 죄송하지만이 따라붙는다. 제지를 받는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선수를 치를 방안중 하나인데 내 죄가 아닌 그런 죄송으로 나의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가끔 SNS를 통해 본인의 경영방식을 강직하게 공개하고 거부의사를 밝히는 사장님들을 볼 때가 있다.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내가 못나 보일 때도 있다.

손님 한 팀의 인원을 4인 이하도 제한을 두었다. 역시 이것도 코로나가 시작이긴 했지만 그 효율성을 나는 맛보았다. 아무리 조용한 손님의 무리도 다수가 모이면 작은 공간을 삼켜버리는데 그것을 막는 아주 좋은 레퍼런스가 되었던 것이다. 혼자 일하는 사람으로 갑자기 몰리는 동선도 줄일 수 있고 말이다. 집합 제한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그래서 종종 그것을 설명하다 또 길을 잃고 정신의 피폐함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저 내 가게의 운영방침이 그러한 것이라는데 왜 꼬치꼬치 안 되는 이유를 묻는 것이며 나는 왜 그것을 납득 시키려고 애쓰는가 말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거부당하는 손님의 입장을 이해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가게의 규칙이라는 것은 융통성으로 한없이 허물어내기 쉽다 여기겠지만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전부의 사업장이기도 한 것인데, 역시 내 입장이기만 한 것이다.

오늘도 음료를 사들고 들어온 목소리가 큰 손님들로 기가 빨릴 대로 빨렸다. 음료는 사들고 왔지만 케이크는 각각 시켰지 않나... 커피보다는 분명 더 비싸니까 (모든 게 돈인가 싶겠지만 사업장에서는 돈의 중요성이 크기도 하고 그것만큼 빠르게 위로되는 것이 없기도 하다.)로 위로하면서 낮 시간에 손님이 너무 없이 쟁여두었던 잉여로 그 시간을 견뎠다.

오픈 초에 손님이 없는 낮 시간에 남녀 손님이 들어와서 음료를 시키고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 좀 크게 말해도 되겠냐 누가 들어오면 낮추겠다 하여 그런 제안은 처음이라 어리둥절 그러라 했다. 약간의 사담을 그렇게 크지 않게 나누는가 싶더니 대본을 펴 리딩 하는 듯싶더니 아예 일어나 거울 앞을 무대 삼아 동작까지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크게 말한다는 것이 저것이었나 황당하면서도 아무말 하지 못했다. 다른 손님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 사람들은 심지어 문을 열고 나가 외부 나무 데크를 무대 삼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공연 연습을 했었더랬다. 그 뒤로도 종종 배우로 보이는 사람들이 혼자 혹은 다수로 앉아 들리는 소리로 대본 연습을 하거나 공연의 에피소드로 대사로 주고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게 배우로서의 자부심 일지는 모르겠으나 왜 카페에 와서 그러는 것인지 여전히도 납득되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내가 더 싫었었다.

오늘의 그 사람들도 공연의 종사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노래를 종종 불렀고 들리는 대화가 그랬다. 뮤지컬 영상을 같이 보는 것을 보아 미루어 짐작한 것이다. 동영상은 이어폰을 사용해 달라 했다. 이제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은 가능해졌으나 말하기 전까지의 나름의 견주는 시간은 여전히 괴롭다.

마감을 하고 퇴근을 해 씻으면서 문득 상식과 기준의 애매모호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어쩌면 내 몫인지도 모르겠다. 상식과 기준에서 애매모호함이 나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 스탠스. 나 스스로가 명확하지 않으면 애매모호가 되는 것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10년 차에 접어든다. 경기는 점점 더 나빠진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한 번도 경기가 좋아진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자영업을 하면서 그것에 대한 체감이 크고 코로나 종식을 운운할 때도 딱히 좋아지는 그 무엇을 경험하지 못하였기로 내가 얼마나 오래 이 가게를 꾸려 나갈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10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그나마 오는 손님들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10년을 꽉 채우는 그 시점에 책을 한 권 내면 좋겠다고 계획해 본다. 이 카페를 좋아해 주는 손님들은 이미 나라는 주인을 이해하고 긍정해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확신한다. 나를 긍정하지 않더라도 카페의 공간을 이해하고 납득하고 모든 메뉴를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남아 내 카페의 손님이 되어 주고 있음을 안다.

사실 긴 글의 모든 부정적 상황의 경험에서도 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고민하여 만든 메뉴들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들 때문이고, 햇볕과 그늘의 그림자가 기가 막히게 예쁜 순간에 화룡점정처럼 앉아 공간을 누리고 있는 손님들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게 분명한 손님의 뒷모습 때문이다. 내가 보는 풍경을 같이 보고 즐겨주는 손님 때문이다. 때가 되면 잊지 않고 들려 인사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손님들. 좋지 못한 경험도 사람이 만들지만 그 못지않게 나쁨을 좋음으로 상쇄시켜주는 것도 손님, 사람들이다.

이옥섭 감독이 그랬다. 너무 짜증이 나는 어떤 상황에서 그 짜증의 원인이 되는 사람을 (환경까지도 포함이라고 이해했다.)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사랑스럽더라고.

너무 기 빨리는 사람을, 상황을 만나면 내 책이 이야깃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잘 경험하여 모아두는 일이 내게도 가능할까 의심하며, 웃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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