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함께 다시 읽기, <설국>
『설국』을 다시 읽으며
며칠 만에 『설국』 창을 다시 열었다.
반기 결산 발표로 마음은 분주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시마무라의 세계에 다시 스며들고 싶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시마무라가 드디어 ‘여자’를 마주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여러 번역본으로 읽어보니, 같은 문장도 다르게 들린다.
“띠만은 어울리지 않게 비싼 것인 듯했으나 그것이 웬지 오히려 안쓰럽게 보였다.” (유승휴 역)
“오비(帯)만은 걸맞지 않게 비싼 것 같아, 그것이 도리어 애처롭게 보였다.” (김소운 역)
한 줄의 띠에서 느껴지는 안쓰러움.
그것은 여자의 삶의 무게이자, 치장 너머의 허기와 상처를 드러낸다.
예전에 팀원에게 뉴욕에서 큰 경험을 해 보라며 여행비를 건넨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몽블랑 벨트를 선물해주었다.
나는 “이걸 어디다 해야 하나?”라는 우스운 말을 했지만,
지금은 그 벨트만큼은 낡아도 항상 차고 다닌다.
무언가를 대신해서, 혹은 잊지 않기 위해.
“열아홉이라고 했다. 사나이의 본바탕을 웬만큼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김소운 역)
열아홉이라는 말이 너무 어울리지 않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너무 일찍 세상의 속내를 알아버린 듯한 표정,
감정을 절제하는 일에 이미 익숙한 얼굴.
그녀는 자신의 업業을 알고 있었고,
시마무라는 그것을 대신 말해주듯 바라보고 있었다.
“산의 감상이 여자에게까지 꼬리를 끌고 온 듯했다.” (김소운 역)
『설국』이라는 제목을 떠올리면 당연히 감정의 매개는 ‘눈’일 것 같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감정을 ‘산’으로부터 끌고 온다.
눈은 정적이다. 모든 소리를 지우고, 시간을 멈춘다.
하지만 산은 움직임이다. 산을 걷고, 오르고, 숨 쉬며 감각이 살아난다.
감상(感傷)은 여자에게서 산으로 이어졌지만,
시마무라는 그것을 거꾸로, 산에서 여자로 향하는 감정으로 표현한다.
그는 여자를 바라보며 더 이상 관찰자만은 아니었다.
눈은 공간이고,
산은 감정의 통로이며,
여자는 그 감정의 종착지였다.
이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린 『설국』의 한 축 아닐까.
자연 속 인간을 바라보던 시선이, 인간 속 자연을 느끼는 감정으로 옮겨간다.
감정은 배경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을 걷고, 부딪히며,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다.
그런 산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산이 끝나는 어딘가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누군가의 표정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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