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젊은느티나무 Jun 08. 2016

도무지 힘이 나지 않을 때

난, (그런대로)괜찮아.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아

음악도 들어보고

방 천장도 물끄러미 쳐다 보았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유스케>를 몰아보며

기분 전환을 해 보려 했는데

그 유쾌하디 유쾌한 유스케에서 유독,
마음 쓰린 장면만 눈에 띈다.

어제는 그랬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내게 큰 생채기를 남겼다.




겨우, 지난 번에 담아 두었던 민들레 사진을 생각해냈다.

홀씨 하나가 겨우 걸려 있는 듯한 이 사진은 얼핏,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때와 사뭇 다른 점은 땅에 떨어져도 걱정이 없다는 게 아닐런지. 


'땅에 떨어져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몇 해 전, 출근길에 적어 두었던 글이 생각났다.

그때는 나이 마흔을 앞두던 때라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얘기에 신경이 쓰이던 때였다.

아마 그때의 나는 어린왕자처럼 되고 싶었나 보다.

지난 글은 나를 반추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


<무제>

플라타너스의 선이 굵은 흰몸집과
느티나무의 촘촘한 앙상한 가지가 앞뒤로 한데 어우러져
아프리카의,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처럼 보인다

여기는 실은,
양재시민의 숲
새벽 어스름
모든 것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 시간
플라타너스가,
느티나무가 아프리카의 바오밥나무로,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로 변한다

나도 조금은 어려진다


2012.01.06 06:33




그로부터 계절의 반이 지났다.


모든 것을 불분명하게 만들기도 했던 그때의 새벽 어스름은 사라지고 대신 선명하고 쨍한 날이 내게 다가왔다.

지금으로부터 계절의 반이 지나는 동안만큼은 기분 좋은 상상을 더해 보기로 한다.


보리 새싹이 겨울 언 땅을 밀어내고, 얼굴을 내밀던 날의 기억이라든지, 그날 그 자리에서 아침햇살을 받으며 순수한 미소를 지었던 일과  그 당시로는 드물게 그 장면을 사진에 남겨 두었던 일, 그 사진이 책장 앨범 어딘가에 남아 있으리라는 안도감.

생애 처음 맛보던 커피의 맛과 그날의 날아오를 듯했던 기분.
그녀의 입술이 생각보다는 차가워서 놀랐던 일이라든지. 사과향을 닮았다든지.

보름달이 푸른 빛을 내던 때의 봉당을 가득 채우던 백합향.
감자 꽃이 피는 때라면 빨래는 유난히 하얗게 빛이 나고 나를 놀리듯 잡힐 듯 잡히지 않던 하얀 나비의 날개짓이라든지...


이제 곧, 아빠가 되는 동생에 대한 생각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이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