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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느티나무 Jun 15. 2016

과유불급

배 덜 고픈 이의 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그렇지 아니함 보다 못하다' 했으니 이를 과유불급이라 한다.


비가 내리는 둥 마는 둥,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한 모양이 하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뛴 내 모습이다.

내게는 특별할 수 있으나 당신에게는 그렇지 아니함일 수도 다시 한번 깨달은 하루.


그래서일까?

저녁에는 밥이 몹시 고팠다.

밥은 첫 끼니이니 지금 헛헛한 내 마음을 채울 만한 것은 밥만 한 것이 없겠다.


서둘러 인사를 마치고 근처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니 아뿔싸!

저녁 어스름, 비 오는 퇴근길이라 어디든지 술상이 펼쳐져 있구나.

저런 곳에 혼자 쭈그려 앉아 밥을 달라고 한다면 인심 좋은 곳에서라면 '담에 옵시오.' 할테고 인심 좀 사나운 양반이라면 아래 우로 나를 훑을지 모르겠다.



조금 더 들어가 보니 분식집 몇 곳이랑 멸치국수집이로구나.

평상시라면야 냉큼 들어가 멸치육수 국수를 한 그릇 후딱 해치웠겠지만 오늘은 그날이 아니다.

별수없이 골목 초입에 보아 두었던 뼈해장국집을 찾았다.

그러면서 위안을 삼는다.


'24시간이면 어떻누?', '밥과 국만으로 승부를 보는 집이니 어쩌면 내가 찾는 집이 틀림없겠구나.'하며 초입까지 돌아나오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바로 앞으로 들어가던 여자분도 뼈해장국을 시키고 내 앞에 앉았는 이들도 전부 뼈해장국을 들고들 계시니 오늘, 날을 잘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나온 배추 김치가 손바닥 만하니 이걸 가위로 오려내는 건 옳지 않다 싶어 젓가락으로 길게 쭉쭉 찢고 앉아 있으니 건넷편 아주마니가 빤히 바라보신다.


'보실 테면 보시라지.'


고개는 그대로 김치를 향한 채로 입가에 미소만 띄운다.

심드렁해졌는지 그만 두고 앞엣 상대와 담소하는 게 귀에 들렸다.


드디어 밥이 나왔다.

공기를 들어 앞뒤로 툭툭 쳐내어 서둘러 말아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즐겁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뼈해장국이 나왔다.


'어 이건 좀 빠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거 사달이로구나.


해장국을 덜 끓어내어 엉긴 채로구나.

국밥 하나 시켜 놓고 유난스럽다 할까 싶어 뚝배기에서 더 데우리라 생각하고 그냥 먹기로 했다.


곁들여 나온 고추가 그나마 입맛을 돋우어 밥을 크게 한 술 떴다.


'아, 이런 과유불급이로다. 손님에게 뜨신 밥을 내려고 김도 빠지지 않은 채 뚜껑을 닫았구나.'


밥은 저희들끼리 뜨거운 채로 밥공기에서 한 몸이 되었다.

밥이 맛나면 참말로 기분이 좋아질 것을.

주인의 깊은 배려가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었다.


국은 덜 끓어 고기는 엉기고 입에서 식감이 찐덕거렸다. 기름마저 둥실 뜨는구나.

그래도 시장이 반찬인 게로고.



어느새 비워낸 밥그릇에 마지막 남은 당근 한 개를 입에 물어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치르며 한 마디 건네기로 했다.


'밥은 한 김 빼신 뒤에 공기에 담으세요.'


영화 <오션스 일레븐>에서 사울이 지었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나왔다.

때마침 부는 바람, 참 선선하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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