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운명
해가 아직 저물기 전인데
달이 둥싯 떠 있는 것은
안양천 한 켠에 미루나무가
홀연히 자라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영문도 모르는 채
반사체가 되는 삶,
그것이 달의 운명쯤 된다면
자라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미루나무의 삶이 설명이 된다.
뉘라서
그 섭리를 설명하겠느냐마는
보란 듯이 자라나는 이 푸르름을
미루나무 스스로의 힘은 아니라고 해 둔다.
그래야만
내 자신 또한,
어쭙기는 해도
당신들의 햇빛을 반사해내는
저 달빛쯤 되겠노라는
나의 다짐을 온전히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