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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느티나무 Jun 16. 2016

첫사랑, 첫사랑?

봉딕이는 

밥을 참 많이도 싸 왔다.

넘들의 두배쯤 되는 누런 도시락을 두 개나 싸왔다. 뭐 저만 먹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니 동네에서만 놀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러 ''에서 흩어져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이곳 중학교로 모였다.

그렇게 한 철을 지내고 나니 저희들끼리 친한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래봐야 수십 명 뿐이었으니 너, 나라고 할 것도 사실 없었다.  


4교시가 되면 양은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 놓고 주번은 시시 때때로 그덜 뒤집는 특권을 누렸다.

이놈을 저 위에 놓고 놈을 이 알리 놓고.

바로 뒤집었다가 엎어놨다가.  

지글지글 들기름이 기화하여 꽃을 피우는 때가 자리를 바꿔줘야 하는 때다.


제일 밑바닥에는 김치를 깔고 그 위에 들기름을 잔뜩 뿌리고 고추장을 넣는다. 그렇게 만든 뒤에는 고슬고슬하게 지은 찰진 밥을 얹어 한 김 뺀 뒤에 뚜껑을 닫아 둔다.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계란부침 하나 없는 단촐하디 단촐한 도시락이었지만 요맘때처럼 날이 쎄한 날이면 그 시절의 도시락이 먹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추억을 얘기할라치면 이치들은 어찌된 일인지 그런 도시락을 알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어쩌다 알게 된 강남의 한 고깃집에서 그런 도시락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한번 찾아갔으나 소세지전과 콩자반, 계란후라이가 들어 있는 도시락으로서 내가 추억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애시당초 강원도 지방의 양념을 적게 넣어 만든 김치도 없겠거니와 집집마다 맛이 달랐던 장맛을 강남의 쌈장에서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친구들에게서 빼앗아 먹는 그 맛도 있을리가 없는 데다가 4교시에 몰래 먹는 맛도 없었으니 강남의 번듯한 식당에서 그것도 후식으로 먹는 도시락이 맛좋을 리 없었다.


그에 비하면 봉딕이가 싸 오는 검은 콩이 잔뜩 들어 있는 도시락은 정말 맛좋았다.

봉딕이는 밥을 먹을 때 한 숟갈 얌전히 뜨는 법이 없었는데 그 방법을 잠시 설명하자면 이렇다.

큰수저를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불도저처럼 최대한 많이 얹은 후 한 입에 우겨넣었다.

봉딕이 도시락이 푸짐함을 주는 것이라면 철이의 도시락은 매운 맛을 잘 먹지 못래 김치가 빠져 있고 대신 총각무를 썰어 넣어 간장으로 간을 했는데 그 밥도 묘하게 맛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밝을 병(炳)자를 쓰는 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의 도시락이 제일로 맛있었다. 먹는 순간 입에 감아 도는 감칠맛이 일품이었는데 덩치에 맞지않게 작은 크기의 도시락을 싸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얼굴 한 가득 하얀 이를 드러 내놓고 같이 먹자 하던 녀석의 까만 얼굴이 이따금 생각나 흐뭇해 질 뿐이다.


언젠가 하얀 눈이라도 폴폴 날려 그날의 추억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그리워 정도가 되어 그때의 친구들과 연탄불 난로를 피워 도시락을 데워 먹는다면 그때의 맛이 날까.

모를 일이다.


암, 첫사랑은 덮어 두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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