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상징을 부여한다는 것은

땅콩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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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생각지도 않았던 땅콩을 선물로 받을 때 마음이 먹먹해져서 그가 먼저 일어나겠노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곤란했을지 모르겠다.

이 일을 통해 땅콩에 대해 이전에 갖고 있던 소중한 상징은 다시한번 견고해졌다.



1.

어제 일로 씨앗땅콩을 '말가옷'이나 먹었다는 얘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잠시 몸을 의탁하고자 들어간 아빠의 본가에서는 생각과 달리 퍽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올 수 있었지만 그런 대로 여러가지 재미난 추억이 생겨났다.

땅콩 이야기도 마찬가지.

넷째 할아버지 댁에서 이듬해 봄 종자로 쓰려던 씨앗 땅콩을 나와 내 동생 그리고 그댁 손자들(나와는 육촌간)과 말 가웃이나 되는 생땅통을 하룻밤 새 다 먹었다는 거였다.

도무지 기억의 흔적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일들.

어쩌다 동생들에게 물어보면 이녘들도 고개를 절레 절레하며 뜨악 하는 표정을 짓고 마는 것이다.

그도 그럴테지.

볶은 땅콩도 아니요.

생땅콩을 넷이서 다 먹었으면 공평이 나누어도 두 되가 넘는 양이다. 정상대로(?)라면 며칠 간 배앓이를 해야 옳았으며 적어도 열 한 살 이후의 일일테니 그 정도라면 기억이 나야 옳다.

나는 피식 웃으며 드디어 엄니가 내게 장난을 한 거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여름, 참깨를 베어 내는 일을 도울 때였던가? 당숙 아주머니께 그 일을 여쭤보니 자지러지게 웃으신다.

어랏? 사실이었던 말인가?

사실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밤새 먹고 난 걸 이튿날 아침에 알게 되었을 때 가장 어른이신 넷째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이 탈이 날까 근심하셨다고 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시골에서 이듬해 파종을 위해 남겨 주는 종자(씨앗)들은 그 소중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너무 추워 얼리는 일도 없어야 하고 방을 너무 데워 싹을 틔우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

그렇게 소중히 간수하던 것을 다 먹었으니 큰일이 날 법도 한데 아이들 배앓이 걱정을 하셨다 한다. 그 무렵 광에서 곰삭아 익어가던 연시를 하나씩 먹여 두셨는지 어쩌셨는지 배앓이 기억이 전혀 없다.




2.

오랜 생활 한 직장에 있다 보니 말을 그리 하지 않을 뿐이지 친동기 같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일들이 내 마음 깊이 와 닿는 일이 잦다.

추석 연휴를 본가로 보내러 간다며 꾸벅 인사를 하는 직원에게 참기름 반 홉 정도를 들려 보냈다. 한시코 사양했지만 그 정도는 부담을 가질 일도 아니며 무엇보다 몸에 좋은 것이니 나물에 곁들이면 좋을 거라 했다.

무엇이라도 하나, 작은 것이라도 하나 나눌 수 있다니 이 또한 기쁨이다.

그래 그렇게 잊고 길고 긴 연휴 끝에 하루를 더 쉬고 그 다음 날은 외근을 갔던 그 친구가 어제 나를 찾았다.

여기 계실 줄 알았다며 나를 찾은 그가 몇 마디 인사를 나누더니 먼저 일어선다며 내민 것이 이 땅콩.


JUST DO IT

내게는 '옳은 일은 지금 바로 하라'는 위로처럼 들렸다.

성주로부터 가방에 수줍게 담아 온 그의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가정에 큰 축복이 임하길 가만히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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