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추억>
골목의 매력은 처음 찾는 이에게는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데에 있지나 않을까?
골목길이 어지럽게 이어진 곳에서 호기롭게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좁은 골목을 지나며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가도 골목 안 풍경을 마음을 놓기도 했다. 키가 좀 큰 사람이라면 담 너머를 일부러 넘보려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이기 마련이었을 텐데 어쩌다 보면 넘의 집 마루에서 식사하는 장면에 눈이 마주쳐 민망했던 경험도 있을 터였다.
날이 맑은 가을 골목 안을 걷다 보면 월담하지 못하도록 박아 둔 유리 조각들이 흐르는 세월 속에 무던해진 모습을 한 채 빛을 받는 모습을 보일라치면 골목 안의 이런 것들이 어쩌면 인생과도 조금은 닮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혈기가 왕성할 때의 날카로움을 감추지 않고 번쩍 빛을 내던 어설픔이 나이가 들면서 무뎌진 유리 조각처럼 빛을 받을 때면 그대로 은은한 하늘에서 내린 빛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원숙함마저 느껴지게 하였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 안을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은 어찌 보면 매일의 삶 같기도 하고 그러다 불쑥 큰 길을 만나 반갑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는 인생의 어떤 한 부분 같다는 생각이 솔찮이 들었다.
산을 돌려 깎아 만든 그 동네에는 유난히 골목이 많았다. 남에서 북으로 넘어가는 큰 길-이라고 해 봐야 차 한 대 겨우 넘어가는-을 제외하면 산을 좌우로 돌아나가는 길은 전부 골목이었다.
처음에는 가로등도 별로 없던 그 곳으로 이사를 간 해에는 낯선 두려움이 많았지만 하루 하루 지나면서 그 두려움은 그 동네에 사는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어떤 특권으로 변하였다.
시내를 가려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큰길을 남으로 따라 내려와서 버스가 다니는 대로를 건넌 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돌아간 뒤 버스에서 내려 다시 어느 정도 걸어야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남북으로 이어진 큰길을 북으로 넘어 동쪽으로 오솔길처럼 좁다랗게 이어진 골목 안을 헤집고 다니면 좀더 빠른 지름길로 갈 수 있었다.
그 길을 처음 갈 때에는 말했던 대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반, 길이 막혀있을 때의 낭패감을 맛볼 수 밖에 없지만 하루 하루 내공이 쌓이다 보면 시나브로 골목 안 고수가 되어 갔다.
그렇게 뜷어 놓은 골목도 많이 다니다 보면 새로운 길을 찾기 마련이었는데 새로운 것을 찾는 데 늘 기쁨을 느끼는 성격은 아마 그때 형성된 것은 아닌지...
하루는 좁은 골목을 여느 때처럼 걷고 있는데 평소와 달리 굳게 닫혔던 쪽문-대문을 달 형편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은 곳이었다-을 열어 집안청소를 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문이 열린 틈으로 보이는 거실에는 야트막한 지붕 밑으로 빼곡히 들어 차 있는 책들이 보였다. 사실 요즘의 거실과는 다른 차이가.있지만 딱히 갖다 붙일 말이 없는 이 거실 겸 부엌인 장소에는 두꺼운 고서들로 들어차 있었다.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치고 악한 이 없다는 그말처럼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댁 아저씨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저런 책을 읽어 보였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졌던 게 어느 새 수십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따뜻한 기대감을 갖게 되면 그 길이 좀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그 골목으로 한참이나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볕이 좋은 날, 문밖으로 내어 놓은 화분에 하얀 부추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거나 노란색 가지꽃이 피어 있는 따라 가다 보면 새로운 길도 찾기 마련이었는데 확인되지 않은 길을 걷는 어느 정도의 위험적요소는 있기 마련이었다.
5월이 되면 산비알을 따라 공기돌처럼 뿌려진 집들 사이사이에는 좁은 틈을 따라 파꽃이 피었다.
탐스럽기로만 따지면 저 파꽃만한 것이 있을까? 해 보일 수만 있다면 저 파꽃의 아름다운 전설을 들려 주련만...
그렇게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길에 탐닉하고 있을 때였다.
(투 비 콘티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