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추억>
2.
산을 둘러가며 길을 깎았다고는 하나 군데 군데 손이 미치는 곳에는 오월의 향기가 가득 넘쳤다. 특히 그 마을언덕 꼭대기에는 철조망으로 막아 놓은 저수조가 있었는데 아름드리 떡갈나무가 몇 그루씩 어울려 사이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설에나 나온다는 푸른 용의 뿔을 닮은 듯한 어린 순들이 이제 막 열어제낀 듯한 하늘을 향해 첫발을 내디는 게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게 울창한 숲으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정상 즈음에 다다를 즈음이면 길은 우리집에서 북쪽을 바라볼 때의 오른쪽, 즉 동쪽이 되었다.
거기엔 두 갈래길이 있었는데 하나는 멀리 치악까지 관망하며 동에서 남으로 거의 빙둘러 돌아가는 길이었고 또 하나는 더 정상까지 올라간 후 다른 마을을 거쳐 저 멀리 방송국께로 내려오는 길이라 들었다.
앞엣 길은 전에 이곳으로 오기 전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홀로 집을 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길로 그 무렵 그 골목길에 있는 집보다는 다소 낡은 집들이 많은 곳이었다. 우리가 가장 나중에 갔던 곳은 여름해가 막 넘어가기 전 어둑할 무렵의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는 집이었다.
시내가 내려다 보였지만 워낙에 떨어져 있어 닭들을 풀어 놓아 부리로 땅을 헤치며 벌레를 찾고 있었다. 산비알로 내려깔리며 터를 잡은 작은 밭에는 그래도 밭이라며 이것 저것 많이 심겨져 있었다.
왠지 푸근하고 정겨운 느낌이 많은 곳이었으나 해질 녘의 쓸쓸한 느낌 때문이었는지, 그땐 어린 마음에 좀더 도심의 생활을 동경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결국 그 집으로 이사가지 않았다.
좋은 곳 잘 얻기 바란다는 그 집 주인의 말이 허공에 사라지는 동안에도 못내 아쉬움은 남았다. 내려오는 동안에 군데 군데 불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전에 없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래 이런 곳을 등에 대고 산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지.
결국 아는 분의 도움으로 소방도로 옆의 집을 얻게 되었고 좋은 분을 만나 지내는 동안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해가 여러 번 바뀌고 목소리도 지금처럼 중저음-사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중저음이라고;;;-이 되어 갈 무렵의 오월...
소금공장에서 언덕길을 넘어오다가 본 하얀나비를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지난 해 어느 때쯤의 그곳.
그 갈림길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발길은 가 보지 않았던 길로 접어 들고 있었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길게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조금 평탄해진 곳이 나와 어딘가 하고 보니 어느 집 마당에 서 있는 것이었다.
길 중간 중간 낮게 심기운 나무들이 있어 넘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앞을 막고 있는 오래된 철문-반대편이 훤히 보이는-을 열고 지나왔는데 아무래도 남의 집을 그냥 들어온 모양이었다. 헌데도 무슨 조화가 씌었는지 얼른 돌아나갈 생각을 안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작은 마당에는 잔디도 깔려 있었고 화단에는 회양목이 가지런했다. 화단석도 잘 다듬어진 채로 있는 것으로 보아 정성을 많이 쏟은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곳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병꽃나무에 앉은 제비나비를 반가운 마음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훌쩍 날갯짓을 하여 바라본 곳에는 진보라색 교복을 입은 어떤 여자애가 미동도 않고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투 비 콘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