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추억>
"헝아. 낮이 좋아, 밤이 좋아?"
마중을 나온답시고 멀리 섬들께까지 마중 나온 동생이 물었다.
숨을 헉헉 대면서 "어?"했다.
차부가 있는 곳에서 섬뜰 입구까지가 약 300미터. 거기에서 동생이 마중 나와 있던 다리까지가 1000m 남짓. 어두운 밤길을 3학년 형들을 따라 바삐 걸어 온 길 덕에 숨을 좀 헐떡였다.
동생과 만난 뒤에는 숨을 좀 고를 수있었다. 어느새 나만큼이나 자란 동생은 내 걸음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어 걸었기 때문에 아까보다는 천천히 걸어도 되었다. 저 앞 공회당 앞 가로등이 천연스럽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여름 부나방들이 잔뜩 날아드는 걸로 보아 조만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동생을 재촉해서 발을 서두르려는데 또 물었다.
"헝아, 밤이 좋아, 낮이 좋아?"
그제서야 나는 발을 멈추고 동생을 바로 보았다.
"뭐라고? 밤이 좋냐고 낮이 좋냐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던 동생에게
"글쎄?"라며 이도 저도 아닌 답을 했는데 동생은 좀 확실하게 답을 해 달라고 했다.
"음... 지금 생각해 보니 밤이 좋은 것 같아."
발걸음을 떼며 말했다.
어느덧 마을회관을 지나 윗마을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형들과도 헤어진 뒤였고 우리만 남은 걸음은 조금 느릿해진 뒤였다.
"아, 다행이다. 역시 그랬구나."
알 수 없는 대답을 한 뒤 옆에서 깽깽이 걸음을 했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 뒤로 몇 번이나 이유를 물어봤지만 동생은 지금은 안된다고 하며 늘 대답을 미뤄왔다. 어느 순간, 나도 그 물음을 잊어 버렸다.
그날 동생은 왜 그런 것을 물어보았을까?
밤이 깊어지는 요맘때에는 그날의 일들이 떠오를 때가 많았다.
동생은 원치 않던 이사를 한 뒤에도 몇 번이나 예전 살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우표 값도 구하기 힘들어 그나마 전달이 힘들어지고 뜸해지자 어느새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사 온 첫 날 밤하늘의 별들이 새하얗게 빛나고 있을 때 동생은 그 광경을 몹시 낯설어했다. 그때 동생의 나이 겨우 2학년이었다.
아마 별들이 쏟아질 듯한 걸 보며 무섭기도 했을 테지.
같은 하늘을 나만 감성 가득한 아름다움으로 받은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런 동생이 중학교 2년이 되고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무렵부터 마중을 나오기 시작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는 색이 하얀 물탱크가 있었는데 여느 시골 마을이 다 그러하듯이 달이 밝은 밤에는 소복을 하얗게 입은 귀신이 거기 나온다는 둥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열 번 들을 동안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둥 기괴한 전설이 많았다.
그리고 거기를 눈을 감고 달려 순식 간에 지난다 해도 바로 앞에는 낡은 방앗간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밤마다 요상한 것들이 깃들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혼을 빼 놓네 어쩌네 하면서 겁을 주었던 터라 시골길이 그렇지 않아도 낯선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무서웠다.
어쩌다 소리를 지르고 깨어 보면 꿈. 꿈에서는 영락 없이 그 방앗간을 지나 하얀 물탱크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동생은 홀로 내려와 나를 기다리다가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그 때 나를 데리러 왔던 동생이 낮이 좋은지 밤이 좋은지 물어봤던 것은 처음 이사왔을 때보다 조금은 성장한 동생이 이제는 낮보다도 밤이 좋아진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해 볼 뿐이다. 녀석도 밤의 어둠이 들려 주는 '내 안의 소리'를 듣게 된 것인가?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밤이 깊어지고 새벽으로 넘어갈 무렵 진한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나?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된 물탱크를 지나면서 동생은 한 마디 더했다.
"헝아."
"어? 왜?"
"헝아 눈이 반짝 거려."
"뭐? 무섭게 왜 그러냐. 무섭잖아."
"몰라. 아무튼 반짝거려." 그렇게 말하고 총총 달아나는 동생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진보라빛 하늘엔 여전히 별이 밝았다.
"얘. 너 여기서 뭐하니?"
"얘. 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까의 진보랏빛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하얀 이를 보이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얼굴이 너무나 뽀얬다.
나는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