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지로 깎아 주세요 4

<골목길 추억>

날개형이 데리고 간 곳은 전에 가던 이발소가 아니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부부가 하시던 그 이발소에서는 아저씨가 머리를 깎아 주면 아주머니는 머리를 감겨 주었다.

이발소에서는 보통 아저씨 혼자서 머리도 깎아 주고 머리도 감겨주는 곳이 많았는데 날개형이 어떻게 알아낸 곳인지는 몰라도

향긋한 비누냄새가 풍기는 아주머니가 머리를 감겨주어 기분이 좋았는데...

그날 날개형이 앞장서는 곳은 대림역을 통해 도림천을 건너가는 곳인 모양이었다.

시장 좁은 골목을 지나 지하철로 올라서는 계단으로 오르더니 도림천 다리 밑으로 침을 뱉었다.

침이 떨어지며 땅에 닿기 전에 산산이 부서졌다.


'중력' 때문이야... 라며 날개형이 설명해 주었다.

내 관점에서 보면 모르는 게 없던 형은 특히 과학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침의 무게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땅으로 내려가는 속도가 점점 더해지면서 산산이 부서진다고 했다.

이번에는 몇 칸을 더 올라서서 도림천이 흐르는 곳에 다다랐다.

침을 뱉어 보라고 했다.

뱉어 보았다.


"어, 침이 부서지지 않네, 형?"


나와 동생은 놀라서 입 안이 마르도록 침을 만들어 뱉어 보았으나 땅에 떨어질 때와는 다르게 물에 떨어지는 침은 원래 모양 그대로 형태를 유지했다.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형은 물에서 하늘로 불어오는 바람이 어느 정도 속도를 줄여주기 때문에 침이 부서지지 않는다는 설명을 해 주었다.

자세히 설명해도 잘 알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런 저런 놀이를 하며 대림역을 넘어서서 구로구청 쪽으로 길을 접어든 것 같다.

우리 집 가는 쪽인데..라는 생각을 하며 마침내 다다른 곳은 어느 이발 학원!!

제법 큰 길가 옆에 있는 빌딩 안으로 서너 층을 올라가니 머리도 다 까까중인 형들?이 머리를 깎아 주고 있었다.

창이 널찍한 곳 앞에는 이발의자가 하나씩 간격을 두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이발을 해 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견습생들이 깎아주는 곳이었나 보다.

제일 먼저 내가 깎았다.

내 성격을 형도 알았기 때문에 그쪽에 특별히 얘기해서 아주 짧지는 않게 했다.

가위질로 다듬었던 기억이 있다.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커터기로만 잘라주는 여느 집보다는 더 훌륭한 실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다 깎은 뒤에 동생은 그 사이에 날개형에게 교육을 받았는지 크게 소리쳤다.


"전, 스폰지로 깎아 주세요!!'


볼이 발그레한 동생이 한 손을 들고 크게 외치자

여기저기서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더니 마침내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스포츠머리로 깎아 달라'라고 얘기하려던 것이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깎느라 진지했던 다른 형들도 무슨 일인지 옆 동료들에게 듣고서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귀여운 동생, 사랑하는 동생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물으니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을 많이 잊어버리고 있는 동생...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도 몰랐다.

이런 글이나마 남기려고 하는 것은 그런 동생이 지금은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얘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얘기일지라도 좀 더 나이가 들면 아마도 그리운 때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쨌든 동생은 그날, 동생이 원하는 대로 스폰지 스타일로 깎게 되었고 머리를 감기고 말리고 나니 아주 귀여운 밤톨이 되어 있었다.

날개형은 동생의 뒤통수에서 정수리로 쓸어 넘기면서 그 감촉을 느껴 보았다.

스포츠머리는 그런 재미가 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은 절약한 돈-이발 학원은 이발소보다 엄청 쌌다-으로 쥐포튀김 몇 개를 사서 나누어주었다.

방학 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재미였다.

방학이 아닌 때에는 면 내에 있는 이발소를 다녔지만 그곳이 나에게 대들었던 1년 후배 녀석의 집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동생네 친구 미장원에 가게 되었다.

그곳은 가는 사람마다 똑같은 스타일로 깎는 묘한 재주를 가진 곳이었다.

그보다 면 내에 있는 곳은 가격이 비쌌던 터라, 실은 우리 형제는 자재기 고갯마루에 있는 허름한 집을 찾아가는 일이 많았다.

서울에서 가위질 좀 했던 모양이었는데 다시 시골로 돌아온 뒤로는 농사를 지으며 가끔 있는 손님을 받아 주곤 했다.

집에 없는 경우에는 논으로 밭으로 찾아다녔던 기억이 났다.

늘 바가지 머리를 깎아 주었던 아저씨, 이제 초로의 노인이 되었을 테지.

가격이 쌌기 때문에 오는 길에는 좀 더 위쪽에 있던 공판장에서 새우깡을 한 봉지 사서 하나씩 나눠 먹으며 돌아왔다.

그해 여름 해는 참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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