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혹은 파에 대한 전설.

<골목길 추억>

몽환적 느낌의 아침. 구름이 지나며 달을 덮으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호랭이 눈. 바로 그렇다. 구름이 지날 때마다 눈을 좌우로 굴리고 고개도 이리저리 돌린다. 어쩐지 좀 오싹하다. 날이 춥다 하여 따끈하게 먹은 떡국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떡국 따끈한 국물이 아직 내 몸에 남아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사골 푹 우려내어 뽀얗게 우려낸 국물 아니어도 사태살 푹푹 삶아 낸 국물에 떡을 삶고 아까의 사태살을 죽죽 찢어 넣어 고명으로 얹었더랬다. 아침 입맛에 좀 느끼할까 쫑쫑 썰어 넣은 파가 향미를 돋우었더랬다. 조선간장으로 간하여 만든 따끈하고 구수한 국물 뒤로 이어지는 알싸한 향이 남은 피로감을 가시게 했다. 파. 고기 구울 때 마늘을 많이들 자신다고 하시던데 이다음에는 생파를 좀 드셔 보시기를.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잘게 썬 생파를 넣어 살짝 볶아내어 접시에 따로 담아둔다.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뚜껑을 덮은 뒤에 고기를 구워내어 가늘게 썰어 둔 생파를 얹어 싸 먹는 맛이란... 그렇지만 내 입맛엔 어쩐지 겨울을 막 이겨낸 이른 봄의 파를 데쳐내어 먹는 파 숙회가 최고였다. 긴긴 겨울밤에 몸의 정기가 다 빠져나간 느낌인 것만 같다가도 그놈 무쳐낸 것만 먹어도 되살아나곤 하였다. 아니 말을 잘못하였다. 이른 봄에 저 덤불 아래 겨울을 난 달래가 그만이었다. 눈 녹은 물에 헹궈내어 한 입 뜯어먹으면 차라리 단 맛. 달래 아니라도 파가 없었다면 어쨌을까. 문득 옛날이야기가 하나 생각이 난다. 호랭이 담배 태우던 시절. 사람들이 파를 알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했다. 평소에도 농사가 변변치 않던 때라 심한 가뭄이 들어 몹시 굶주리게 되면 어느덧 눈이 뒤집혀 서로를 잡아먹는 때도 있었다 하더라. 듣자 하니 그때에는 사람 아닌 기르는 짐승으로 보였는데 배가 부르고 나면 그게 짐승이 아님을 알고 애간장이 끊어졌다더라. 그래 그런 비참한 생활을 하는 중에 어디선가 들리는 말을 들었는데 거기에는 그런 풍습이 말끔히 사라졌다기에 친한 친구 셋이 그걸 알기 위해 길을 떠났다더라. 우여곡절 끝에 당도하여 보니 그곳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에 뭔 풀 같은 걸 얹어 먹더라 했으니 그게 바로 '파'였다. 마을 사람들이 준 걸 받아먹으니 과연 풍미가 더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맛이었다 했지. 그래 그 파씨를 얻어 가지고 마을에 왔는데 하필이면 기근이 든 때라. 때마침 눈이 뒤집혀 친구 둘이 죽임을 당하고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친구마저 저 산자락 밑에서 붙잡혀 마을로 끌려오는 참이었다. '아. 아. 원통하다' 속으로 울부짖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라지. 겨울 힘든 때를 지나고 다음 해 봄이 되자 그 마을에도 온갖 풀이 돋아나 주린 배를 달래게 되었는데 그해 봄에는 어쩐지 처음 보는 풀이 나서 먹어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지. 가만 살펴보니 세 친구들이 도망을 다니던 길을 따라 뾰죽 뽀죽 돋아났더랬다. 얼른 캐내어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니 그제야 사람들의 머리가 깨어났다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전 겨울 스러져간 세 친구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큰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했다. 그 뒤로 때마다 파를 빠뜨리지 않고 먹었다고 들었다. 파는 백합과에 속한 식물이다. 백합은 한자로 百合이라 쓴다. 모든 것에 잘 들어맞는다는 뜻으로 기근과 질병을 물리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같은 갈래의 파에 대한 전설이 썩 그럴듯하다. 이제 올 겨울도 거의 다 갔고 얼마 있지 아니하면 봄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갓 나온 생파를 가늘게 썰어 입에 물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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