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2층에 불이 켜진다. 걷어진 커튼뒤로 부스스한 머리의 그녀가 나타난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기본적인 단장을 하고 옆방으로 간다. 아직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운 후 반려견과 함께 마당으로 나간다.
밤새 참았던 배변을 시원하게 마친 강아지는 마당을 몇 바퀴나 뛰고 뒹굴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마치 순서가 정해진 도장 깨기를 하듯이 잠시의 머무름도 없이 밖으로 나와 정원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아이들은 아침을 먹지 않나? 순간 궁금해졌다. 아침밥을 차릴 시간이 없이 계속 무언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에 모자도 없이 장갑도 없이 나온 그녀는 금세 한 움큼의 잡초를 뽑아댄다. 한쪽 구석에 잡초 무덤을 만들어 놓고는 한껏 기지개를 켠다. 마치 온 동네의 공기를 다 마셔버리겠다는 기세다. 이제야 그녀의 얼굴이 살짝 펴진다. 다시 집에 들어간 그녀는 잠시 후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듯하다. 매일 똑같은 아침루틴이다. 주말에는 아이들의 등교가 없는터라 잡초무덤을 만들기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정원을 맴맴 맴돈다.
그녀에게 도착하는 택배는 늘 식물이다. 간혹 생필품을 시키기도 하지만, 생필품이 올 때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밋밋하다. 그녀는 식물을 키우며 즐거움을 얻는 듯하다. 사부작사부작 밭에서 뭔가를 움직거리며 머물다 간 자리에는 며칠 후에 푸릇푸릇 한 새싹들이 올라오고, 장갑과 호미를 들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잡초가 씨가 마른다. 그렇게 봄이 된 정원을 하루 종일 누비는 그녀는 오후에 사라지고 다음날 아침까지 볼 수 없다.
그녀는 지루해 보일 만큼 너무나 같은 하루하루를 연출한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반려견의 배변을 돕고, 아이들 등교를 함께하고, 세상 지루하고 재미없는 표정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데 이상하다. 항상 지루해 보이지 않고, 뭔가 미세한 표정의 즐거움이 보인다. 좀 더 그 지루한 일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아이들의 등교시간 전까지는 얼핏 보면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반려견이 그녀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당에서 예정보다 더 오래 머무는 경우에는 미간에 잔뜩 주름이 낀다.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여야 하는 촉박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 깊은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나, 한 움큼 잡초를 뽑아대는 그녀의 표정은 비장하다 못해 나라를 구한듯한 성취감 마저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모자와 장갑을 끼고 밭 여기저기를 둘러볼 때면 간혹 금덩어리라도 찾은 듯 보이지 않는 뭔가를 들고 두 손에 고이 모신다. 추측하건대 새로운 어떤 새싹을 발견한 듯 보인다. 정말 하찮은 것들을 계속 발굴해 내는 듯하다.
그렇다. 그녀의 미세한 표정의 변화가 무엇인지 알겠다. 아주 작은 하찮은 것들에 대한 예의이다. 그 마음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며, 힘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걸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솔직히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 자체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먹고살다 보면, 이런 내면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바로 내면을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한몫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오늘도 역시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무방비 상태로 만나는 잡초를 한 움큼 뽑아내고, 그 사이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를 오늘도 새롭게 발견해 낸다.
나도 오늘은 내 안의 잡초 한 움큼은 아니어도 한줄기 뽑아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