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일기
소독약 냄새가 은은하게 풍긴다. 살결이 뻣뻣한 것인지 침대보가 뻣뻣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으나 차가운 침대보는 살결에 엉김이 없다. 눈을 뜨고자 할 때 이외에는 눈을 감고 있는다. 사실 두 경계는 모호하다. 눈을 떴을 때는 생각을 하고 눈을 감았을 때는 꿈을 꾸는 것 같다. 생각이 꿈이 되어간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혼이 나서 어머니의 품 속에서 울다 잠이 드는 꿈에서 깨어났다. 몸은 가라앉고 마음은 기화되어 간다. 회사에 취직하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는 꿈을 꿨다. 아내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잠시간 귀를 기울인다. 항상 옆에서 들리던 목소리다. 딸을 낳아 기르는 꿈을 꾸었다. 딸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딸아이와의 꿈은 어느새 저 멀리 흘러가 있지만 아이의 어린 시절로 돌아와 차근차근 곱씹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나고, 가르치고, 성장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았을 무렵 딸아이가 돌아왔다. 그리고 손주. 귀여운 손주의 꿈을 꾸고 싶다. 딸아이에게 손주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눈을 감고 손주의 이름을 머리에서부터 손 끝으로 장기를 지나 다리를 거쳐 발 끝까지 흘려보낸다. 그리고 다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흐르게 하기를 반복한다. 잠드는 곳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손주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