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 고찰 06화

소망할 대상

나는 나를 소망하며 살아왔다.

by 황태


소망이 없어지고, 살아가는 삶이 무의미해질 때가 있다. 이러한 때가 주기적인 시기로서 내게 다가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그렇다.


회사에 전부를 건 인생이 아니라 나만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며, 마음을 다스리고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운동을 하던 나였다. 하지만 하루 8시간 이상을, 출퇴근시간을 합하면 최소 11시간 이상을 보내는 회사가 힘들면 나의 인생의 빛이 꺼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운 일을 능력치에 비해 많이 할당받아서 계속 배우고 공부하고 있는 요즘이다. 감사한 일이지만 사람에게는 적절한 사이즈와 가격의 옷이 다 다른 법이다. 그 옷을 입은 요즘 참 버거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어제 생소한 분야의 업무를 대대직하게 됐다. 한 친구의 대직을 해주는 과장님이 휴가를 가셨는데, 그 친구도 업무 관련한 일로 이틀간 자리를 비우게 된 것이다. 아직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지 않은 나라 여유가 있을 것이라며 이틀의 대직을 위해 단기간 업무를 배우고 어제 하게 됐다.


지금 배우면서 조금씩 하고 있는 일을 하며 대대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다른 과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그나마 잘 끝낼 수 있었다. 다만 모든 일을 끝내고 숫자를 맞추던 과정에서 돈이 안 맞는 것을 발견했다.


실수를 해버리면 수습이 굉장히 어려운 업무였기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20분 동안 계속해서 하루 동안 해온 업무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식은땀이 계속해서 흘렀다. 그리고 과장님께 도움을 청했는데 다행히 다른 업무 때문에 숫자가 안 맞는 것이었다고 하셔서 잘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 30분의 시간 동안 불안한 마음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위가 쓰려오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 2달간 나를 괴롭혔던 위경련 전조 증상이었다. 제대로 앉아있지도 말을 하기도 걷기도 힘들었다. 위가 꼬이려고 그전에 쥐어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날도 하루 종일 일이 많이 터지는 바람에 야근을 하고 남은 분들과 늦게까지 저녁을 먹은 터라 너무 피곤했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남은 대대직인 금요일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목요일도 과장님이 도와주시고, 진행하려던 일도 취소가 되는 바람에 겨우 버틴 것인데 앞이 까마득했다.


그래서 교회로 갔다. 하루만 딱 하루만 더 버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매달릴 참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무서워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배를 부여잡으며 교회에 갔다. 역시 예배 동안에도 쉴 새 없이 배가 아팠다. 찬양을 부르니 배가 더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만은 가벼워졌다. 해답을 찾을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이러한 찬송을 하게 됐다. 소망 없는 나날들에 놓일지라도, 근심과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고 경배하리, 생명의 십자가를 즐거워 하리.


충격이었다. 지금 나는 하루의 소망을 간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있는데, 회사의 삶에 소망의 색이 사그라들어 인생 자체가 무채색이 되어버리기 직전인데, 찬송에서는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라고 했다.


깊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났다. 하루의 소망을 나의 평안과 행복에 두지 말아야 했다. 내 소망은 오직 하나님을 향해야 했다. 당장 내일을 걱정하며 내일의 안녕을 소망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나의 평안과 안녕과 행복만을 소망하고 있었다.


행복과 평안함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됐을 때 이토록 쉽게 무너진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조건을 나의 즐거움에 맞추었기 때문에, 평안의 조건을 나의 편안함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됐다. 소망의 대상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어야 했다. 바라는 일이 나의 행복과 즐거움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그럼 실생활에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명확하고 뚜렷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답은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나인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살아가고 나만을 사랑하게 되고 나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위하고 내가 힘들어지는 순간 나는 무너지게 된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지만 부자의 종들은 자신의 주권을 내려놓기 때문에 차라리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나를 나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과 평안에 강박이 생기는 것이다. 나를 나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의 주권을 내려놓아 하나님께 맡긴다면,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나는 살아질 것이었다.


아직도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나를 계속 내려놓아보려 한다. 나를 소망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때보다 크게 공감하고 고백하게 된다.



(9/5 내게 주어진 묵상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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