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0. 금
인간관계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인연을 끊어낸 것이 많이 속상하고 심란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얽매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이대로 홀로 나만의 고독에 온전히 도달해 그곳에서 잠식되고 싶다.
어제 살짝 외로운 기분을 실감하며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니 로봇청소기가 실내화와 카펫을 이고 지고 한 구석 몰아 놓은 채로 멈춰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자식이나 반려견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무언가 알 수 없는 가장의 책임감이 샘솟아서 힘을 내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다.
소분해 놓은 닭볶음탕을 데우고 그동안 빨래를 했다. 새로 산 유청분리기에 요구르트도 부었다. (그릭요구르트를 먹어보려 한다.) 데워진 닭볶음탕을 식탁에 차려놓고 천천히 먹었다. 먹고 난 뒤 설거지와 부엌청소를 하고 이불을 교체했다. 환기도 시키고 이곳저곳 묵은채 쌓여있는 쓰레기들도 버렸다. 신지 않는 신발들도 한차례 버려 신발장을 비웠다.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정돈되어 갔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집은 내 마음을 반영한 마음의 확장판이 아닐까? 마음이 번잡할수록 내가 거하고 있는 이 집을 소중히 다루면 나 자신이 소중히 다뤄지는 기분이 든다.
집은 내 마음의 확장판이 아닐까?
모든 정리를 마치고 깨끗이 씻고 나와 이런저런 스킨케어를 했다. 그동안 즐거움을 찾아 내 마음의 안식을 찾아 밖으로 미디어로 눈을 돌리며 집을 외면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집을 외면한다면 다른 시간들을 통해 즐거움을 찾았어도 나 자신이 외면당한 것과 같다. 어질러진 집에서 약속들과 미디어를 종횡무진하는 삶이란 나 자신을 잃은 삶이다.
내 집을 돌보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다. 내 집이 깨끗해야 내 마음이 깨끗해진다. 집을 내 마음과 같이 생각하자.
가련한 인생, 김소월 중
가련한, 가련한, 가련한 인생에
첫째는 살음이라, 살음은 곧 살림이다
살림은 곧 사랑이라, 그러면,
사랑은 무언고? 사랑은 곧
제가 저를 희생함이라,
그러면 희생은 무엇? 희생은,
남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