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단 둘이 떠난 스페인 여행
7년 10개월을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빠와 단 둘이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
아빠가 먼저 탑승 수속을 받으러 들어갔다. 아빠만 비즈니스 좌석을 끊어드렸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비쌌지만, 체력이 약한 아빠가 이코노미 좌석에서 긴 시간 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결제했고, 이를 허락해 준 남편에게 참 많이 감사하다.
나중에 뒤따라 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타러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빠가 기다리고 계셨다. 제일 먼저 들어갔으면서, 한참이나 기다렸을 텐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뛰어내려 갔더니 몇 번이 곤 넘어진다며 조심하라 하셨다. 나는 아직도 아빠에겐 아이인 것일까. 아빠는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하시더니 급기야 나중엔 꼭 같이 타자고 했다. 홀로 강한 것 같았던 한 명의 어른은 다시 아이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아이가 된 아빠를 책임지고 여행을 완수해야 하는 한 명의 어른이 되어있었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바르셀로나에서 보자며 인사하고 각자의 탑승구로 들어섰다.
시간 위로 날아올라 있는지도 몰랐던 숨겨진 시간에 다다르는 과정은 참 색다르다. 14시간의 시간을 차근차근 거슬러 가고 있다. 아빠와 함께 앉았으면 서로 덜 심심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제1장의 삶의 막을 내리고 온 사람의 묵은 감정과 피로를 해소할 시간이 필요했다.
퇴사를 앞둔 마지막 일주일은 긴 연애를 끝내는 사람처럼 마음이 우울했다. 회사는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 줬던 단단한 이름표였는데 이제는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랑하지만 이별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들쑤시어지고 붙잡혔던 마음을 다잡아 걸어 놓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세차게 흔들렸고 불안했고 방황했다.
7년 10개월의 시간을 헛되게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격려의 말도 심심찮게 받았다.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순간까지도 퇴사를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지기 위해 떠나온 것이 아닌가. 당당히 결혼했음을 밝히고, 술을 마시며 노는 생활과 멀어지고, 가정과 나의 꿈에 힘쓰기 위해 떠나온 것이 아니었던가.
이별 후에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렵다고 하던데 나는 지금 정형의 시간 위로 날아올라 거슬러가고 있으니 괜찮아질 거다. 바르셀로나 땅에 도착할 때 쯤이면 내 인생의 1막 커튼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순간을 내 기점으로 삼아봐야겠다.
건조한 기내 공기 탓에 한 시간에 한 번씩 로션을 바르고 팩을 붙이고 미스트를 뿌렸다. 연한 로션의 막이 두터워지고 녹진해져 갔다. 걷어낸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고 새살을 틔우는 과정이었다. 짧게 잠을 자고 깨고 자고 깨고를 반복하면서 점차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회복되는 과정이었다. 비행기에 서서 떠있는 힘을 발가락으로 밀어보았다. 아무리 저항해도 꺼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은 이런 느낌인 것 같다. 비행기 안에서 이동하는 나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자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