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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의 가짓수만큼의 유혹

by 황태

루틴의 가짓수만큼의 유혹

전날 팀원 분들 몇 분과 저녁자리를 했다. 오랜만의 저녁약속이라 피곤하긴 했지만 즐거웠고 또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도 맛있었다. 잔뜩 부른 배를 쥐고 집으로 겨우 돌아가서 씻자마자 잠에 들었다. 그리고 잔뜩 피곤에 취해 개운하지 않게 일어나 출근길의 지하철에서도 계속 졸았다. 그러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정거장을 지나쳤다. 원래라면 아침 출근길에 기도를 드릴 텐데 그럴 여유가 없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하고도 짧게 기도를 드렸다. 참 마음에 들지 않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전날 많이 먹어서 몸이 가뜩이나 무거운데, 위가 늘어난 탓에 계속 배가 고팠다. 퇴근하자마자 초콜릿을 먹으면서 집에 가서 저녁을 먹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집 앞 순대 트럭을 지나치지 못했다. (나는 요즘 순대에 빠져있다.) 따뜻한 순대를 사들고 한 두 개 집어 먹었을 때의 행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속이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배달 온 바지의 허리가 잠기지 않자 기분은 더 안 좋아졌다.


사람은 왜 먹고 싶다는 욕망 아래 이렇게나 나약할까. 그리고 왜 하기 싫은 일은 곧 죽어도 하기 싫을까. 삶의 루틴이 깨지자마자 왜 나는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일까.


'부분적으로나마 감각적인 생활을 중단하면 인간의 영혼, 아니 영혼의 모든 기관은 아침마다 활력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의 영성은 다시금 고결한 삶을 살려고 애쓰게 된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어쩌면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살아야만 고결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서는 루틴의 가짓수만큼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일탈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평소와 같은 식단으로 식사를 해야 하고, 그저 침대에 누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고 집을 정돈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 또한 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고 운동을 가야 한다.


전체의 루틴을 지켜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감각적인 생활을 중단하면 다시 활력을 찾게 된다. 순대를 먹고 난 뒤 배도 부르고 졸렸지만 억지로 헬스장에 가서 40분가량 운동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집안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서재에 앉았다. 흐트러진 일상이 다시금 정돈되는 기분이다. 활력이 샘솟아오른다. 하기 싫음을 이겨내는 것이 삶의 원동력으로 바뀐다.


'한 순간이라도 깊이 살면서 삶의 정수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싶었다. 스파르타처럼 강인하게 살아감으로써 삶이 아닌 것을 몽땅 물리치고 싶었다.'

'엄격하게 절약하는 가운데 스파르타 사람들 이상으로 간소하게 생활하고 한층 높은 목적의식을 갖는 것이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우리는 스파르타 사람들처럼 강인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강인해져야만 나의 일상을 파괴하는 유혹들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유혹들은 우리의 삶이 아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높은 목적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엄격한 생활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강인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만의 높은 목적의식을 가져야만 그를 통해 엄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목적의식은 아무래도 글에서 멀어지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매일 한층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나만의 루틴을 방해하기 위한 유혹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루틴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그 수만큼 유혹들을 이겨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이겨내고 나서 루틴을 고수했을 때 나는 고결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그냥 하기 싫은 일들을 꾹 참고 해내면 된다.


그리고 나는 졸음과 귀찮음과 막막함을 이겨내고 지금 서재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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