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만 할 때 더 피곤함을 느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방황기가 있다.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에 의한 행동에서 벗어나 쾌락만을 쫓는 시기. 거창하게 들려올 수도 있지만 단순히 현실에서 벗어나 행동이 도파민에 절여지는 시기다. 이 시기는 보통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현실을 회피하고 싶을 때 다가오는 것 같다. 3월에 원래라면 봤어야 할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히려 일상까지 놓아버리게 됐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긴 방황기조차도 질릴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이다. 루틴을 지키며 사는 절제된 삶에서 벗어난 삶이 드디어 지루해졌기 때문이다. 이 의미 없는 시간들의 반복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비유를 들자면 참을 수 없이 궁금하고 기다려지고 바라던 드라마 다음 화의 결말이 지지부진해지며 보기 싫어지는 상황이랄까.
지난 주말 하염없이 채널을 돌리다 티비 전원을 종료하고 오랜만에 서재로 들어왔다. 너무 아끼고 좋아하는 서재라서 그 당시 모습이나 마음가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던 그 서재로 일단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당장 피하고만 싶었던 강의를 틀었다. 제일 재미없어 보이는 강의를 일부러 골랐다. 춘추전국시대의 출현 배경과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들으며, 주말 내내 누워있었던 허리를 곧추 세우고, 노트에 필기를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있다보니 마음이 평안해져왔다.
강의를 듣고 나서 다시 놀아보자는 생각에 티비 앞으로 나왔지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을 불러 같이 산책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와 집밥을 만들어 먹었다. 하루 종일 쉬었던 토요일에 비해 일요일은 잘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토요일에 비해 일요일이 오히려 덜피곤했다.
하기 싫은 일은 보통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다. 오늘 하루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출근하기 싫은 것이고, 미래를 당장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일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염려를 맡기는 것에서 새로운 하루는 시작된다. 두려움을 덜어내고 하기 싫은 일들로 루틴을 잡아 하나씩 해내다 보면 마음에 드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잘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