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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형 Nov 11. 2024

5. 북한산 거주자의 아침 달리기

순간 예찬 일기

 

 2023년부터 북한산에 살고 있다. 자연이 좋아 북한산에 살고 있는 건 아니다. 부모님께서 산을 좋아하셔서 노후를 보내겠다 마련한 집에서 살게 됐다. 20대인 내가 어째서 노년의 계획이 서린 집에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집을 처음 보러 온 순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도가 높은 산이 주는 청명하고도 명징한 공기가, 그 공기에 서린 정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산 우리 집에 첫눈에 반했다.

 

 회사와 멀다는 단점을 묵살하고 선택한 집이니 만큼 잘 누려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어떻게 누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등산을 다녀볼까 생각했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주말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더 큰 이유를 꼽자면 주말만 되면 사람으로 덕지덕지 부풀어 오르는 북한산은 왠지 싫었다. 나만의 북한산이 아니었다.


  그러다 출·퇴근길의 쾌적한 공기가 떠올랐다. 친구들이 가끔 놀러 올 때마다 놀라곤 하는 우리 동네의 깨질 듯 예리하고 시린 공기가 떠올랐다. 아침에 출근할 때 이 공기를 들이마시노라면 오장육부가 일깨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두운 아침 공기에는 산의 비밀과도 같은 기운이 담겨있다. 새벽에 옹달샘에서 물을 떠 오는 토끼와 같이 북한산이 나눠주는 정기를 노나 마시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오전 4시 50분. 알람 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다. 의식은 겨우 붙잡고 있지만 당장이라도 놓아버릴 준비 또한 되어있다. 몽롱해지려는 순간 다시 알람이 울린다. 다시 의식의 끈을 붙잡기를 반복한다. 나 자신과의 싸움을 10번쯤 한 뒤 오전 5시 20분에 기상한다.

 아침에는 나를 반으로 나눈 것만 같다. 나를 독재자의 마음으로 끊어 내야만 또 다른 내가 몸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힘겨운 아침 때문에 전 날 미리 준비한 옷가지들을 챙겨 입고 오전 5시 30분에 밖으로 나간다. 40분 만에 집 앞 산책로에 섰다.

 

 아침에는 달리기 싫다는 마음이 떠오를 새가 없다. 잠은 덜 깼고, 몸은 춥기 때문에 뇌의 명령 없이 달리는 것이 가능하다. 첫 발을 뗀 순간부터는 조금 더 쉬워진다. 달리기를 할 때는 신나는 팝송이 좋다. 플레이리스트를 매일 반복해서 들으면 시간이 가볍게 가는 효과가 있다.

 11분쯤 달리면 온몸의 의식이 깨어나고 숨이 벅 차오르기 시작한다. 심장의 힘찬 박동으로 피가 손끝으로 발끝으로 그리고 머리끝으로 퍼지는 게 느껴진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정신은 차갑다.


 처음에는 10분 달리고 1분 쉬기를 3번 반복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땐 2번 반복했다. 하지만 2달 정도 달리고 나니 11분쯤에 찾아오는 고비는 웃으며 넘길 수 있다. 계속해서 달린다. 달릴 때는 오늘 입을 옷을 구상하기도 하고, 출근 후에 해야 할 업무를 떠오르기도 한다. 전 날 있었던 행복했던 또는 슬펐던 일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침 달리기는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20분을 채우고 아침 달리기를 종료한다. 앞으로는 1-2분씩 더 늘려갈 셈이다. 30분이 내 최종 목표이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나면 성취감이 전신을 맴돈다. 짜릿한 표정으로 집에 가던 길에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말을 거신 적이 있다. “멋져요. 계속해서 파이팅!” 생각보다 살아가면서 멋있다는 말을 들을 일은 많지 않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던 순간의 기쁨은 오랜 여운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당부까지 새겼다. 처음 마음을 끝까지 계속해서 잘 이어가라는 조언을 귀담았다. 이 후로 나는 아침마다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멋져요. 계속해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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