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일했던 공기업 과장 탈출, 이사장의 사업 일기...ing
공기업을 다닐 때, 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갑옷 안에 있었다. 악성 민원인이 소리를 질러도, 그건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규정'이 싫어서라고 위안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 뒤에는 법무팀도 있고, 감사실도 있고, 무엇보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었다.
하지만 퇴사 후, 내 명함에서 회사 로고가 사라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야생에는 울타리가 없다.
사장이라는 직함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화살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최전방 방패막이'였다. 지난 3년, 나는 뼈저리게 배웠다. 사업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람을 버는 과정이거나 사람을 버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신의 직장 밖에서 만난 두 부류의 인간,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진상'과 나를 다시 걷게 한 '귀인'에 대한 기록이다.
# 진상: 피할 수 없는 수업료
초보 사장 시절, 나는 모든 고객이 왕인 줄 알았다. 매출 10만 원이 아쉬워 무리한 요구도 웃으며 받아줬다. 하지만 그것이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겪은 '진짜 빌런'들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이었다.
- 약속을 밥 먹듯 어기는 사람: 시간은 자영업자에게 돈이다. 노쇼, 예약 후 갑작스런 취소, 결제일 미루기를 반복하는 사람은 내 리듬을 무너뜨린다.
- "나니까 해주는 말이야"라며 선 넘는 훈수꾼: 걱정을 가장해 내 사업을 비하하거나, 무료 서비스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들.
-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는 고객: 업무 범위를 넘어선 개인적인 하소연이나 감정 기복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사람.
[대처법] 3년 차가 된 지금, 나는 나만의 '손절 기준'을 만들었다.
"단 1%의 찜찜함이라도 느껴진다면, 그 계약은 하지 않는다."
그 매출을 포기하면 당장은 배가 고플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과 엮여서 낭비할 에너지와 감정 소모를 생각하면, 거절은 가장 경제적인 투자다. 무례한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 없다. 단호함이 곧 사장의 품격이다.
# 귀인: 예고 없이 찾아오는 선물
반면, 야생에서 만난 '귀인'은 드라마처럼 백마 탄 왕자님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평범한 얼굴로, 가장 힘든 순간에 불쑥 나타났다.
-특별한 이유 없이 나를 믿어준 첫 고객: 경험이 부족한 신생 업체에게 나의 열정과 진심을 믿으며 큰 주문건을 맡겨준 분.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선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직설적으로 말해준, 당시엔 미웠지만 돌이켜보면 생명의 은인 같았던 지인.
-한결같이 다정한 사람: 진심어린 감사를 (오히려 나에게) 표현해주며 응원해 준 사람들.
귀인을 알아보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계산 없이 진심을 다했을 때, 그 진심을 '호구'로 보지 않고 '감동'으로 받아주는 사람. 그들이 바로 귀인이다.
[대처법] 귀인을 만났다면, 붙잡아야 한다. 단,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보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들이 준 기회를 성과로 증명하는 것, 그것이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의리다.
결국, 사업은 사람 공부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인맥이 넓은 사람이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하지만 야생에 나와보니 알겠다. 인맥은 넓히는 게 아니라 '좁히는 것'이다.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10명의 진상을 쳐내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1명의 귀인에게 집중하는 것. 그 밀도 높은 관계가 사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었다.
퇴사 후 1,095일. 통장의 잔고는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의 질은 확실히 높아졌다.
오늘도 나는 진상에게는 정중한 거절을, 귀인에게는 따뜻한 안부를 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사장의 생존 노트]
촉을 믿어라. 쎄한 느낌은 틀린 적이 없다.
거절 멘트는 미리 준비해 둬라. (감정 섞지 말고, 드라이하게)
귀인에게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