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언제나 힘들다.
상하이의 여름은 무척이나 습하고 덥다. 자전거로 등하원을 시키고 있었는데,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2km, 왕복 4km. 하원하고 놀이터에서 들려서 오면 5km로 늘어난다. 뜨거운 여름에 하루 7km를 아기태우고 달릴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재미있게 놀아줘야 한다는 강박. 큰 도시가 다 그렇듯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놀만한 장소는 놀이터밖에 없다.
상상만으로도 습한 상하이에서 혼자 육아를 해낼 자신이 없었다. 다른 방법도 없었다. 프랑스 시댁은 브리타뉴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마침(?) 해변가가 시댁 앞에 있었고 14살 12살 조카들도 곧 방학을 맞이할 터였다. 나에게 남은 옵션은 시댁밖에 없었다. 아이가 푸른 하늘과 넓은 바다와 함께 신나게 놀고 맛나게 먹는 저녁식사를 기대했다. 그리고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시댁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내가 상상하던 육아가 아닌 현실의 육아가 고개를 들었다.
프랑스에서 적응하기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중에 첫 번째는 음식이었다. 생각보다 야채가 적은 프랑스 식단. 시부모님은 나이가 있으셔서 밀키트, 냉동식품을 적절히 조합해서 드시는데, 32개월 아기가 먹기에는 뭔가 부족한 식단들. 보통 식단은 어머님이 결정하시는데, 거기에 내가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하기엔 좀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잠자코 있기로 했다. 아기 음식은 시부모님 식단에 내가 간간이 요리하는 음식들로 먹이기로 했다.
내가 주도하는 살림이 아니기에 당황스러운 날이 많다. 어떤 날은 햄과 감자가 저녁이다. 이런 날엔 속에서 열불이 난다. 어머님은 아마도 햄과 고기를 동급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급하게 집에 있는 계란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
프랑스시댁이라고 해도 나는 한국며느리 아닌가. 매번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은 다 말하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남편은 왜 이렇게 쉽게 얘기하는지. 안 그래도 성격 강한 며느리라고 소문나있는데, 밉상으로 찍히고 싶지 않다.
내가 음식에 더 집착하는 이유는 아이가 또래보다 작은 아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내가 균형 잡힌(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식단으로 먹여도 작은데, 여기서 대충 먹으면 더 안 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나를 감싼다.
두 번째는 행동의 속도. 이건 남편과 살면서도 늘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출발하자 하면 바로 가는 법이 없고 갑자기 이거 챙기고 문자 남기고 갑자기 분주해진다. 그리고 늦어지는 출발. 나는 가자하면 바로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인사하고 나서 문 앞에서 이어지는 대화. 30분은 기본으로 문 앞에서 굿바이 인사를 나누는 그들. 프랑스어를 못하는 나는 이 시간이 참 뻘쭘하다. 이건 상하이에서도 늘 겪는 고충이었다.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새로운 주제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친다. 더 집에 가고 싶어 진다. 남편이 왜 이렇게 굼벵이인가 했더니 평소 몸에 베인 습관이었다.
남편은 늘 나의 ‘빨리빨리’ ‘제때제때’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 - 10분 빨리 도착해서 뭐 할 건데? 왜 꼭 빨리 가야 해?
나 - …..
그러게. 10분 빨리 도착해서 나 뭐 할 거지?
마음으로는 이해해도 막상 그런 상황이 오면 못 견디겠다. 그냥 갔으면 좋겠다. 나의 몸에 베인 빨리빨리. 남편 몸에 베인 여유여유.
이것이 우리 둘의 가장 다른 점이다.
처음 한 달은 이 두 가지만으로도 힘들었다. 내가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내 속이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식은 아직 포기 못 하겠다. 저번주에 자전거를 렌트했다. 이제 * 팡이 없는 이곳에서 내가 쿠* 맨이 되어서 언제든 슈퍼에 가야겠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알고 있는 것일지라도 막상 내 앞에 놓인 상황이 되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조금만 견뎌내면 나의 몸은 변화에 적응한다.
지난 한 달 동안 적응하느라 고생한 나에게 ‘수고했어. 넌 용기 있는 엄마야’라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