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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앞집에는 90세 아티스트가 산다

by 글쓰는 디자이너

우리는 46개월 된 딸아이와 함께 프랑스에 산다. 아침마다 딸은 앞집 할아버지께 신문을 가져다 드린다.

일요일 점심 무렵, 프랑스의 아페리티프 시간이 되었다. 식사 전 간단히 한 잔 마시는 문화인데, 딸아이는 이 시간을 특히 좋아한다. 할아버지가 주시는 초콜릿 과자 때문이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던 중, 탁자 위 스케치북에 적힌 '1983'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스케치북을 들춰보니, 드로잉이 가득했다. 스케치북에 그림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빠삐누 할아버지는 혼자 사신다. 누가 그린 그림일까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이 그림은 누가 그린 거예요?"

"내가 그린 거지."


와! 40년 전 그림인데 아직도 가지고 계시는구나. 빠삐누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다른 스케치북들을 가져오셨다. 1993년, 2003년, 2023년... 마치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 부인과 사별하셨고, 그 후 뇌졸중이 와서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다행히 보행보조기로 집에서는 움직이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할아버지는 매일 그리신다. 꽃을 그리기도 하고, 바다 위의 배를 그리기도 한다.


젊은 시절 혈기 넘치는 사업가로, 두 아이의 아버지로, 화가의 아들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오셨을 텐데, 그의 노년은 혼자였다. 그의 곁에는 종이와 펜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할아버지를 보며 내가 부끄러워졌다. 혼자여서 외롭겠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할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셨고 그림과 함께 살고 계셨다.


50세부터 90세까지, 40년 넘게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신 할아버지. 거동이 불편해서 외출도 어려우신데,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그리고 계시는 할아버지.


화가가 아니어도 그림을 그리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다짐한다.


아이 핑계 대지 않고 꾸준히 그리는 사람이 되자! 나이, 환경, 상황 그 어떤 것도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열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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