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드러운 잎이 가장 깊은 흔적을 남긴다

너는 상처 입은 게 아니다. 너는 가장 사랑받은 잎이었다

by 글쓰는 디자이너

프랑스의 낯선 길 위에서 나는 종종 멈춰 선다. 화려하게 조경된 꽃밭보다는, 보도블록 틈새나 담벼락 아래 제멋대로 자라난 잡초와 나뭇잎들에 더 자주 시선을 빼앗긴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계절을 견뎌내는 그 생명력이, 낯선 땅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려는 지금의 나를 닮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길가에서 풀포기 하나를 들여다보았다. 신기한 일이다. 분명 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인데, 어떤 잎은 매끈하고 멀쩡한 반면, 바로 옆의 어떤 잎은 벌레가 갉아먹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나는 손끝으로 그 거칠어진 잎사귀를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물었다.


'다른 잎들은 다 멀쩡한데, 왜 너만 이렇게 되었니? 왜 벌레들은 너만 먹었을까?'


처음엔 그 구멍들이 안쓰러운 상처처럼 보였다. 운이 없어서, 혹은 남들보다 약해서 당한 피해 같았다. 하지만 가만히 그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생각이 바뀌었다.


벌레는 본능적으로 안다. 어떤 잎이 가장 부드러운지, 어떤 잎이 가장 달콤한 수액을 머금고 있는지 말이다. 뻣뻣하고 맛없는 잎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 풀들의 구멍들은 못나서가 아니라, 이 줄기에서 가장 보드랍고 맛있는 잎이었다는 증거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유난히 상처가 많고 시련이 잦았던 시기는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내가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치열하고 부드럽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밋밋하게 지나간 시절보다, 아픔이 뚫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들이 훗날 더 깊은 무늬를 만든다.


패턴을 그리는 디자이너로서 나는 이제 매끈한 잎보다 벌레 먹은 잎을 더 오래 바라본다. 완벽한 초록보다는 구멍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그 불완전함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너는 상처 입은 게 아니다. 너는 가장 사랑받은 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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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만난 이름 모를 잡초가, 이제 프랑스에서 적응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그 구멍 난 잎사귀를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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