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법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법

말을 뱉어보니, 비로소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한 거죠

by 글쓰는 디자이너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하다가 내가 묻고 내가 답하는 경험, 한 번쯤 해본 적 있으시죠?


저는 우연히 회사 인터뷰를 볼 때, 미리 준비한 답변 대신 저도 모르게 새로운 대답을 했던 경험이 있어요. 찰나의 순간에 입이 먼저 움직였는데, 당황스럽게도 임기응변으로 내뱉은 그 답이 평소 생각보다 훨씬 괜찮더라고요.


그 뒤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곤 해요. 친구의 지인이나 파티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요.


프랑스 회사에 다닐 때였어요. 이직과 잔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죠. 저를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만두고 이직 하라고 조언했지만, 제 마음속은 여전히 먹구름 가득한 혼돈 상태였죠.


그러다 다른 회사 면접을 보게 되었어요. '왜 지금 회사를 떠나려 하나?'라는 질문이 나올 걸 알고 나름의 답변을 준비해 갔죠. 그런데 막상 그 질문을 받고 예상 답변을 이어가던 중, 머릿속에서 지금 회사에 남아야 할 이유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아직 떠날 준비가 안 되었구나"


나를 모르는 이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우리 뇌는 필사적으로 가장 '나다운' 답을 찾아내려 노력하나 봐요.

때로는 너무 떨어 바보같이 답할 때도 있지만, 그 묘한 긴장감 안에서 내 진짜 생각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말을 뱉어보니, 비로소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한 거죠


그 뒤론 포트폴리오 파일을 마치 사직서 품고 다니는 직장인처럼 늘 핸드폰에 저장하고 다녀요. 어디서든 스몰토크를 할 때면 제 작업물은 훌륭한 대화 소재가 되어주거든요.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에게 제 작업을 설명하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나' 싶어 스스로 놀랄 때가 있어요.


나, 정말 많이 노력했었구나

다음엔 비슷하지만 이런 식으로 다르게 디자인해 봐야지


"이건 뭐예요?", "어떤 재료예요?" 같은 질문에 답하다 보면 머릿속에만 맴돌던 파편화된 생각과 단어들이 쏟아져 나와요. 단어들이 스스로 조합을 이루며 문장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죠. 말하는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방법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해요.


생각이 고여있지 않게 자꾸 말을 걸어주는 것. 그것이 제가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이에요. 포트폴리오를 펼치고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설명하는 시간은,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잊고 있던 나의 열정을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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