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뇌, 잘 자라고 있나요 (8)

소아신경과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괜찮다’를 판단할까

소아신경과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괜찮다’를 판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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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중 하나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소아신경과 진료실에서

이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안심의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소아신경과에서는

무엇을 보고 “괜찮다”고 판단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이의 발달에는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기준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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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은

운동, 언어, 사회성, 인지, 정서처럼

여러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영역들은 같은 속도로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는 몸이 먼저 자라고,

어떤 아이는 말이 먼저 트이며,

어떤 아이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빠릅니다.


그래서 소아신경과에서는

한 가지 능력만을 떼어 놓고

괜찮다, 아니다를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전체적인 흐름과 균형을 함께 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직 혼자 서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직립 보행은 개인차가 큰 발달 영역 중 하나이고,

많은 가이드라인에서는

혼자 걷기 시작하는 시점을

생후 12개월부터 18개월까지의 범위로 봅니다.


즉, 12개월에 걷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이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18개월이 될 때까지

다른 운동 발달의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면,

조금 더 지켜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합니다.


언어 발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들은 흔히

“말이 너무 느린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언어는

축적과 폭발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 발달 영역입니다.


단어 수가 또래보다 적더라도,

눈맞춤이 유지되고,

의사소통하려는 의지가 보이며,

이해 능력이 따라오고 있다면

3세 전후까지는

언어가 급격히 늘어나는 과정을 기다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아신경과에서는

단어의 개수만 보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려는 방식과 맥락을 함께 봅니다.


사회성 역시 비슷합니다.

낯가림이 심하거나,

또래와 어울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는지,

반응은 느리지만 점점 확장되고 있는지,

익숙한 환경에서의 모습은 어떤지까지

함께 살펴봅니다.


이렇게 보면,

‘괜찮다’는 판단은

어떤 기준 하나를 충족했기 때문에 내려지는 결론이 아닙니다.

여러 발달 영역이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서로 발목을 잡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종합해 내리는 판단입니다.


한국, 일본, 미국의 발달 관련 가이드라인과

대학병원 소아신경과 안내 자료,

부모 커뮤니티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공통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들었어요.”

“지켜보자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이 말들의 공통된 전제는

발달의 궤적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방향이 유지되고 있다면

소아신경과에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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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속도보다 더 중요한 신호도 있습니다.

이미 할 수 있던 것을 하지 않게 되거나,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발달이 멈춘 것처럼 보이거나,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전혀 관찰되지 않는 경우에는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아신경과에서의 “괜찮다”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흐름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함께 담은 말입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 판단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명확한 선 하나가 그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달은

본래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소아신경과 의사는

아이의 뇌가

지금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어떤 균형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정상 범위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면

“괜찮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냅니다.


이 말은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불안이

아이의 발달을 앞서가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숨을 고르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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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이 언제인지,

소아신경과에서 타협하지 않는 신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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