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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Jul 09. 2024

안녕 어린 왕자... 하코네 어린 왕자 박물관

그날은 출발이 좋지 못했다. 일본 호텔에서는 매우 드물게 조식에 문제가 있었고, 결국 우리는 모든 조식을 취소하고 불편한 맘으로 밖으로 나왔다. 우중충한 하늘은 곧 뭐라도 쏟아질 것 같았고 아점을 먹을 식당을 찾아야 했다. 역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핏 보면 이슬비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싸락눈의 결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참 예뻤다.



둘이 파란 우산을 하나 펼친 채로 후~ 불면 날아가는 눈송이들과 장난을 치며 걷다 보니 근사한 식당이 나타났다.



좁고 붐비던 조식 장소와 달리 막 문을 연 식당은 한산했고, 분위기도 좋았으며 셰프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즉석에서 음식을 조리해 줬다. 참 얄팍한 생각이지만, 잘 대접받고, 잘 먹고 식당을 나서니 잿빛 하늘은 정겹고 젖은 땅은 상쾌했다.




그리고 설렘으로 찾은 어린 왕자  박물관....


봄이나 여름이었으면 더 활기가 있었을까? 앙상한 나무들과 차가운 햇빛을 받은 마을 건물들, 그리고 눈을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어린 왕자와 그 친구들은 추워 보였다. 규모도 크지 않았고 딱히 대단한 볼거리도 없는 소박한 박물관이었지만 왠지 그래서 더 머물수록 정이 갔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생텍쥐베리의 말처럼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눈으로 이 아쉬운 조형물들 뒤에 숨은 그 원형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짧은 순례의 길을 기쁘게 걸을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촬영 금지였던) 생텍쥐베리의 방이었다. 역사적인 고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저곳에 앉아서 글을 써보고 싶을 정도로  끌렸던 작가의 공간이었다.



다른 하나는 출구 쪽 홀에서 상영되는 영상이었는데 작가의 짧은 여정과 마지막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프피는 어두운 밤하늘로 사라지는 작가를 보며 훌쩍였다.


"그래. 이 세상이 싫어서 어린 왕자를 만나러 간 거야. (훌쩍) 바이~."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프랑스 패전 후에 미국으로 망명한 그를 비시 괴뢰 정권은 자기들 편으로 선전했고, 드골의 망명정부는 생텍쥐베리가 친 나치라고 공격했다. 괴로워하던 그가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복귀했을 때 나이는 43세, 당시 조종사의 나이 제한은 35세였다. 악화된 건강으로 출격 회수까지 제한받으며 최고령의 그가 굳이 하늘로 날아올라야 했던 이유는... 하늘에 홀로 있으면 그는 세상의 추함에서 벗어나 오롯이 책을 읽을 수 있었기에. 구름의 문이 열리고, 별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사막에서 헤어진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었다기에... 하지만, 현실은...


갑자기 엔티제의 짓궂은 TJ 기질이 발동했다.


"근데 생텍쥐베리는 격추된 거라는데..."


FP 인프피의 눈이 약간 세모꼴로 변했다.


"그렇게 생각해?"


"마르세이유 해변에서 한 어부가 발견..."


"그냥 사라진 거야!"


"그렇...지."


비행사는 어린 왕자를 만났고, 어린 왕자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비행사는 어린 왕자를 찾아 헤맸고 어느 날 그도 어린 왕자처럼 사라졌다... 그게 맞는 거다... 사라져야 영원히 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또 하나 사라진 게 있다.



글을 쓰며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니.... 코로나 여파와 시설의 노후로 23년 3월 폐관...


언젠가 다시 찾고 싶었는데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막이 되어버렸다. 우리 둘의 기억 속 오아시스로 남아있을 뿐...( 촬영 금지였던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But the eyes are blind.
One must look with the heart.

- Little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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