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만 해도 이곳에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무렵 어머니가 천국으로 떠나셨고 인프피의 어머니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영안실에서 마지막 어루만진 어머니의 차가운 얼굴은 아직도 손끝이 시리고, 중환자실에 누우신 장모님의 병원복 위로 다시 슬픈 그림자가 겹쳐졌다. 몇 주간 집과 지방 병원 수백 킬로를 무거운 마음으로 오가며 암스테르담의 여름 프로젝트는 지난밤 꿈처럼 점차 멀어져 갔는데...
공항 앞 'I amsterdam' 사인을 보고서야 우리가 정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일렁이는 안경 너머로 도시는 16년 전 그 모습을 드러내며 다시 찾은 꿈처럼 우리를 맞아주었다.
암스테르담 한 달 일정은 인프피의 공연 프로젝트다. 유학시절 동창인 네덜란드 친구가 제작하는 프로덕션의 연출을 맡아 오게 된 일정이다. 7년 전 이들 부부와 프랑스 앙시에서 만났을 때 우리 대화의 주제어는 Serendipity였는데 이번에는 Mystery로 정했다. 우리가 오게 된 과정부터가 미스터리인 것을 보면 한 달 동안 이 미스터리씨는 자기의 모습을 한 꺼풀씩 열어 보여줄 모양이다.
암스테르담 거리를 걸으며 인프피와 나의 눈에 유난히 부모님 연배의 서양 어르신들이 들어온다. 손을 잡고 가는 연로한 커플, 홀로 자전거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는 어르신들을 보며 떠나간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 밟히고, 마음으로부터 한 마디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잘 지내고 계신 거죠?"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더 해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다...
우리는 나이가 더 들어 어떤 모습으로 함께 걷고 있을까? 혼자 배낭과 온갖 짐을이고 진 할아버지와 홀가분한 몸으로 옆에서 사뿐사뿐 걷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인프피는 저게 미래의 우리 모습이라며 깔깔 웃는다. 그래, 옆에만 있어다오!...
진주교. 1950년대
진주 출신인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떠나고 난 후에, 어머니의 절친인 진주 친구는 방학 때면 남강다리까지 마중 나와서 친구가 돌아오기를 하루종일 애타게 기다렸다고 한다. 먼지 나는 달구지가 지나가고, 아이들이 깔깔 대며 지나가고, 농부들이 지나가고, 자전거가 지나가고... 마침내 무심한 얼굴들 틈으로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을 때 그 친구는 얼마나 기뻐했을까? 마중 나온 친구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또 얼마나 기뻤을까?
천 칠백개의 다리가 있는 이곳에서 며칠 동안 그 연습을 해본다.
아침이면가까운 운하 다리까지 함께 걸어가 연습실로 출근하는 인프피를 배웅한다. 손 흔들고 등을 돌리면 얼굴이 사라지고, 작은 뒷모습은 한없이 더 작아지다가 사람들에게 가려져소멸되는 저릿한 헤어짐의 의식.
돌아올 시간이 되면 다리 난간에 기대어 만남의 의식을 준비한다. 차와 많은 자전거들이 지나가고, 단체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달려가고, 이 얼굴 저 얼굴들, 큰 몸과 작은 몸들이 멀리서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는데...
마침내 보인다.
숨어도 감추어도 알아보는 그 얼굴. 나를 찾아내고 아이처럼 빛나는 그 얼굴. 그 순간 외로움은 구석으로 물러나고, 햇살은 눈부신 커튼콜 조명을, 하늘과 구름은 아름다운 배경막을, 반짝거리는 물결이 보내는 갈채... 때마침 지나는 배에서 미스터리씨가 내게 윙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