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4차산업 혁명?'
누구를 위한 논의였을까?
앞서 언급했지만 2016년 ‘다보스포럼’의 핵심은 ‘4차 산업혁명’이었다. 관련 주제들이 상정돼 미래에 어떤 과학 기술이 등장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어떤 비즈니스가 경제를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 흥미롭게 논의했다.
사실, 새로운 산업혁명과 관련한 논의는 이미 2010년대 초에 시작됐다.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논의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중앙정부와 각 기관, 여론의 반응은 2016년 이후에나 서둘러 움직였고, 2017년에 이르러서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새로운 부서들을 조직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국민은 잘 모르고 있었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융합, 네트워크 시대로 나아가는 현재도 여전히 밀실 회의는 존재하고 있다. 중앙 수준에서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논의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여전히 국민은 소외된 채.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에피소드들이 연이어 등장할 수 있었다.
4차 산업? 4차 산업혁명? 4차산업 혁명?
이제, 독자들께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4차 산업’과 ‘4차 산업혁명’ ‘4차산업 혁명’ 중 어떤 말이 맞는 말일까? 독자에 따라 다른 답을 고를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너무 쉬워서 유치한 질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보겠다.
에피소드 1.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기간 중, ‘4차 산업’ 콘퍼런스
조금 지난 이야기다. 2017년 ‘제4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기간에 국제 콘퍼런스를 총괄했기 때문에 참여기관에서 제시한 콘퍼런스 주제와 기획안을 전부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전기자동차와 관련한 주제였고, 추가로 에너지, 미래 자동차, 자율주행자동차 등을 다루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제주특별자치도 담당 공무원이 관련 콘퍼런스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기획안을 보내왔다. 주제는 분명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제목에는 ‘4차 산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뜨거운 이슈인 4차 산업혁명을 다루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담당 공무원은 ‘4차 산업’과 ‘4차 산업혁명’을 구분하지 못했다.
에피소드 2. 4차 산업혁명 엑스포를 준비하는데, 왜 4차 산업 기획안이지?
제주도에서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를 마치고 나니, 한 청년 딜러로부터 2018년도에 대전광역시에서 엑스포를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미국에서 20대를 보내고, 드론과 관련한 미국 업체에서 한국 딜러십을 취득해 온 청년이었다. 그 청년의 전공은 경영학이었고, 본인의 말로는 CES(매년 1월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가전박람회 CES (Consumer Electronics Show))를 말한다) 등 다양한 전시의 진행요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2개월에 걸쳐 기본(안)을 작성했는데, 그 청년은 4차 산업혁명 대신 ‘4차 산업’이라는 문구를 기획안에 계속 표기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유명 드론 기업 딜러십을 받아 온 청년의 위세에 눌린 것이었을까? 실질적인 전문지식이 없는 청년이었는데도 지방의원이나, 사업가들이 그 청년을 전문가 수준으로 대우해줬다.
에피소드 3. ‘4차 산업 담당자가 나타나다.’
에피소드 2와 연결되는 내용이다. 엑스포를 추진하다 보니 당연히 지역 의원과 공무원을 만나야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대전광역시에서 4차 산업혁명 엑스포를 진행한다고 해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만난 담당 공무원의 명함을 받는 순간 기대는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산업정책과 / 4차 산업 TF 000”
라고 명함에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황당한 부분은 하단부에
“4차 산업혁명 특별시 대전”
이라고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담당 공무원과 회의를 마치고 난 후, 참석했던 시의원과 에피소드 2의 청년, 그리고 카이스트 연구원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필자 : (조심스럽게) 의원님, ‘4차 산업’과 ‘4차 산업혁명’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녀간 담당관의 명함에는 ‘4차 산업’이라고 적혀 있는데, 틀린 표현입니다.
의원 : (멋쩍게 웃으며) 공무원들이 잘 몰라서 그런 걸 거야.
카이스트 연구원 : (의아해하며) 그 둘이 다른 의미였습니까?
필자 : (의아하게 쳐다보며) 네. 그 둘은 다른 의미입니다.
청년 :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
이후 대전광역시에서 진행하려 했던 엑스포는 진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담당 공무원들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공무원들의 얼굴은 모두 한숨 섞인 표정으로 가득했다.
에피소드 4. ‘4차산업 혁명’은 뭐지?
한 번은 동대구역을 지나는 중이었다. 가는 길에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가 있는데, 전문학교 건물에 횡으로 크게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4차산업 혁명시대의 성공취업도 경북산업직업전문학교가 꼭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차에서 내려 다른 현수막도 살펴보았는데,
‘4차 산업 선도교육기관.....’
‘4차 산업혁명 대비 정보보안과정.....’
이라고 적힌 현수막도 찾을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이라는 표현이 다 적혀 있었다. 당연히 같은 의미로 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수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4차 산업혁명’으로 통일됐다.
에피소드 5. 믿었던 언론조차 ‘4차산업’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줘야 할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4차산업 혁명하려면 기본 탄탄해야…기초연구·인재 육성 핵심 (밑줄 필자 강조)
정우성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새 정부 4차산업 정책 조언 역“인공지능·빅데이터 육성에 치중하는 것은 잘못된 대응”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기본역량'이 탄탄해야 합니다.”
새 정부 4차산업 정책 논의의 조언자로 참여하고 있는 정우성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14일 "기본역량은 기초연구, 인재 육성, 혁신 생태계 구축 등을 포함한다"며 "지금처럼 인공지능·빅데이터 육성 등을 4차 산업혁명 대응으로 치부한다면, (중략) "4차 산업혁명은 시대적 흐름이나 기조이지 특정 기술이나 제품군, 시장 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4차 산업혁명을 좁게 해석해 단편적인 기술과 산업 분야에 치중한다면, 국가의 지속성장을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보다 큰 관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생략)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13/0200000000AKR20170613125600017.HTML)
위의 기사는 연합뉴스에서 2017년 6월 14일에 보도된 것이다. 한 창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슈가 부상하고 관련 책들도 계속 나오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기사는 ‘4차 산업혁명’과 ‘4차산업’을 같은 의미로 병행해서 표기하고 있다. 제목 자체도 ‘4차산업 혁명’이다.
약 6개월이 지난 후 기사를 보자.
탄탄한 ‘산학 협력’…美 4차산업 발전의 동력
입력 2018.01.08 (09:42) | 수정 2018.01.08.
<앵커 멘트>기업 투자와 정부 지원을 받은 대학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면 곧바로 산업으로 연결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탄탄한 산학 협력 현장을 김철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중략)
<녹취> 징샹 샤오(오토엑스 대표) : "(실리콘 밸리에는) 인공지능과 컴퓨터 비젼, 로봇 공학 분야에 우수한 교육을 받은 연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첨단 신사업을 위한 지속적인 정부 지원도 실리콘밸리가 4차 산업 발전의 허브로 자리잡는데 역할을 했습니다. (하단 생략)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591572)
2018년 1월 8일 보도 내용이다. 제목도 ‘4차산업’이고, 클로징 멘트에서도 ‘4차산업’이라고 말한다. 물론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다.
에피소드 6. 4차 산업혁명 관련 서적도 ‘4차산업’
관련 서적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책 표지 : 문재인 후보 중앙선대위 일자리 위원회 본부장 겸 새로운 대한민국 위원회 4차 산업분과 공동위원장 유웅환 박사의 ‘사람을 위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다.’
(『사람을 위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다』 (유웅환. 비즈니스맵, 2017) 표지 참고)
‘4차 산업분과’와 ‘4차 산업혁명’은 다른 의미로 썼을까? 아닐 것이다. 이외에도 ‘4차 산업’과 ‘4차 산업혁명’을 구분하지 않고 표기한 책들이 꽤 있었다.
독자에 따라서는 단순히 언어 실수를 확대해석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 자체가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단어가 많다. 그리고 단언컨대, 위의 사례는 실수가 아니다. 특히, 연합뉴스나 KBS와 같은 언론 기관에서조차 단어를 잘못 사용할까? 즉, 실수가 아니라 무지(無知)이다. 이런 사례는 많이 줄긴 했지만, 2020년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옥외 광고 게시판, 현수막, 그리고 앵커들의 멘트 속에서 쉽게 발견하고 들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무지가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해야 할 담당 공무원, 청년들의 직업교육을 지원하는 직업전문학교,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야 할 언론 기관에서 찾을 수 있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