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1부 4차 산업혁명과 국가(5)

왜 글이라는 짐을 지게 되었는가?

by 조작가Join

왜 글이라는 짐을 지게 되었는가?


시리즈의 서두가 좀 길었다. 이제야 연재하게 될 글의 작문 동기와 목적을 정리하려고 한다. 처음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인지(認知)’의 문제였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이 계속 진행됐고, 관련한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 수준을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명확하게 분석해 대책을 제시하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건 좋다. 그러나 수용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건 아무리 좋은 구슬이 있어도 꿰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거창한 선전에 매몰돼 현실을 묻고 넘어가는 듯하다.


다음으로 2018년은 지방선거가 있는 해였다.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지방분권과 4차 산업혁명, 두 주제는 대한민국 미래의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 후보도 두 가지 주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고, 다뤘다 하더라도 수박 겉핥기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방분권과 4차 산업혁명이 좋은 연결 고리가 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방분권과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술을 새로운 부대에 담는 것이다. 지방분권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공약들이 분명히 무수히 등장했지만, 현실은 이러한 공약(公約)을 다시 공약(空約)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실현하고 있다.

잘 모를 때 글을 쉽게 쓸 수 있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글발’이 선다. 그러나 다시 위축된다. 스스로 무지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래서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자신만만했던 필체는 어느덧 수줍어 고개를 떨궈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없으면 시작조차 못 한다. 신중함이기도 하고 글쓰기의 위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나 하나의 방법은 무지함을 인정하면서 쓰는 것이다. 비판받는 건 당연하고, 누군가가 지적하면 그 지적의 시비(是非)를 따져서 받아들이면 된다. 욕먹는 게 두려워서 글을 쓰지 못한다면, 이제는 신중한 게 아니라 졸보라서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글은 전문가들의 영역이 아니다. 그럴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렇지 않다. 전공 학위를 받기 위해서 10여 년을 학업에 몰입하는 동안 세상은 저만큼 앞서 나간다. 교수가 되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손익분기점을 따져볼 때 쉽게 만회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물론, 전문가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짜 전문가도 많은 현실에서 우리는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가장 쉽게 저지르고 있다.

그렇다고 글을 아무렇게나 쓰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신중이라는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의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글의 특징과 목적

필자가 연재하려는 관련 글들은 아래와 같은 특징과 목적이 있다.

우선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최대한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썼다. 독자들이 읽으면서 웃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가운데 ‘이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라고 다짐하기를 독려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그 내용은 분명, 우스운 내용인데 등장인물들의 직위를 따져보면, 안타깝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 미래가 왔을 때를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하다.

둘째, 양심적으로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최근에는 과거와 비교해 글쓰기가 쉬워졌고, 작가가 되는 일도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본인 스스로 글을 쓰고 출판할 수 있다. 그러나 쉽게 글을 쓰다 보니, 다른 사람의 글을 출처조차 밝히지 않고 도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가 고위직에 임명하기 전에 후보자 검증을 위해 진행하는 청문회도 표절 시비로 시끄러울 때가 적지 않다. 따라서 본 연재는 필자가 참고한 자료를 최대한 밝히려고 한다.

셋째, 이 부분이 4차 산업혁명을 다룬 다른 글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산업혁명을 인문·사회적인 감성으로 이해하고 풀었다는 점이다. 물론, 보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이나 정치, 행정, 사회적인 내용은 전문가 – 전공 교수, 박사 등 – 들의 몫이지만 그들이 4차 산업혁명을 당장 다루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목적이다.


첫째, 토론을 제언한다. 한국 문화가 토론에 취약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현실을 모르고 상아탑에 안주하면서 먼지 묻을 책만 쌓아두는 학자나, 의자에 앉아서 탁상공론하는 정책입안자들만의 말싸움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서 그들의 어려움과 바람을 토로할 수 있는 장(場)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참 전부터 괴테가 남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이 인용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은 ‘빨리빨리’로 현재 수준의 경제와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이제는 방향 - ‘비전’, 혹은 ‘선도(先導)’ 등 - 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데, 그 방법으로 다양한 구성원, 각 계층이 모여서 진행하는 ‘토론’이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실질적인 실천조직의 개발을 촉구한다. 위에서 토론을 제언했다면, 그 말을 실천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게 조직일 수도 있고, 제도일 수도 있다. 단, 천편일률적인 상하전달 구조는 아니어야 한다.

따라서 전국 단위의 큰 그림보다 지방 단위의 적절한 크기의 그림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분권과 4차 산업혁명을 함께 다루는 논의와 토론은 더 중요해진다.


셋째, 거시적으로는 웰빙-포용 사회(Wellbeing – Inclusive Society)의 사회를 상상한다. 먼저, 웰빙의 의미를 살펴보면

“웰빙(Well-being 웰비잉)은 본래 복지나 행복의 정도를 의미하나 특정한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유행어로 사용되며, 건강에 좋다고 주장되는 제품에 붙는 수식어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라고 한다. 이런 기본적인 의미에다가 조금 더 보태서 사용하려고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Angus Stewart Deaton)의 『위대한 탈출』에서 언급된 웰빙의 의미를 빌릴 것이다.

아울러 포용은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는 ‘포용’ - 포용 도시, 포용적 성장, 포용 국가 – 등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둘을 결합해서 만든 ‘웰빙-포용 사회’란 미래 사회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하며, 나와 다른 – 국적, 인종, 성별, 나이, 계급, 지역 등 - 사람들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인간 이외의 ‘살아 있는 모든 것(환경)’의 공존까지 모색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지방분권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지고자 한다. 그래서 돌멩이가 떨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작은 파동 같은 울림이 독자들의 마음에 전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작가 : 조연호 , 편집 : 안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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