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1부 4차 산업혁명과 국가(4)

'웃픈' 현실, 그리고 다가올 미래

by 조작가Join

웃픈’ 현실


‘웃프’다는 말이 등장했다.

‘웃다’의 ‘웃’과 ‘슬프다’의 ‘프’를 조합하여 만든 낱말로, 그 뜻은 ‘웃기면서 슬프다’인데 의미 구조상 ‘슬프다’에 방점이 찍힌다. 『한국일보 2017. 02. 02.』에서 참고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30대 자녀가 60대 부모를 상대로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인데, 어쨌든 재판부는 딸의 승소를 결정해서 용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10대나 대학교에 다니는 20대 초반의 자녀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다 큰 30대 자녀가 용돈을 받으려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용돈을 주지 않는 부모를 상대로 소송했다는 게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이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할 나이가 됐음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부류를 뜻하는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탄생할 정도이다. 이런 종류의 말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부메랑족’, ‘연어족’도 존재한다. 따로 독립해 학업을 이어 나가거나, 혹은 나가서 살던 자녀들이 부모님과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얹혀사는 청년들을 일컫는다. 또 다른 신조어는 영국에서 부모의 퇴직연금에 의존해 사는 자녀를 가리켜 ‘키퍼스(Kippers)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조금 더 보태서 ‘포기 세대’가 등장했다. 연애, 결혼, 출산 등 세 가지를 포기한다는 3포 세대를 시작으로 집과 경력 포기를 추가한 5포 세대가 등장했고, 이어서 희망과 인간관계마저도 포기한다는 7포 세대, 이어서 9포 세대가 등장하더니 ‘완포(완전 포기)’, ‘전포(전부 포기)’ 등이 등장해서 이른바 N포 세대로 마침표를 찍었다.

종종 나이 든 어르신들과 위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 당장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재밌게 웃으신다. 그러나 잠시 후 웃음은 사라지고 곧 현실 문제를 파악하고는 심각한 표정이 된다. 바로 ‘웃픈’ 마음이다. 재미있지만, 심각한 상황.


‘열정페이’

청년들의 힘은 열정이다. 당장은 힘들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청년들은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과거에 성공한 사람들은 조언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맡겨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다 보면, 당연히 인정받고 본인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이 ‘페이’와 결합해 합성어가 되는 순간 열정은 인질이 돼 버린다. 먼저, 열정페이의 뜻을 살펴보자.

어려운 취업 현실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을 이름.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신조어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참고』

과거에는 당장은 힘들어도 장래를 생각하면서 지금의 고통을 견디는 게 당연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던 시공간이 분명히 존재했다. 시간이 흐르면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내 집을 장만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던 인생이 ‘에스컬레이터’가 존재 했다. 그 시절에는 ‘열정’이 청년의 특권이었고, 그 힘이 정당하게 대우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아니다. 과거에는 열정이 청년의 미래였으나, 지금은 현재와 미래의 상실로 전락했다. 착취자는 열정을 악용해서 청년들의 시공간을 빨아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청년에게 보상해 줄 수 없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게 하며 열정을 강요한다. 2007년, 우석훈 박사의 『88만 원 세대』가 출간됐다.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청년 세대를 분석해서 사회를 비판했다. 그러나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달라진 부분이 얼마나 있는가? 대통령이 세 번 바뀌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시절(88만 원 세대) 누군가는 ‘청춘 콘서트’를 만들어서 전국을 순회하면서 청년들의 멘토로 추앙받다가, 현재는 지지했던 열정 청춘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열정’에 대한 강조는 이제 ‘또! 열정페이?’라는 반문을 낳고 있으며, 최근에는 열심히 살아도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조소하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제목의 책도 등장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니까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하고 ‘나는 이제, 청춘도 아닌데 아프다!’라고 대답한다. 현재의 냉혹한 상황에 많은 전문가가 ‘그래도 내일은 나아질 거야!’라고 하면서 희망의 마약을 계속 투여해 보지만, 이제는 그 양의 임계치를 넘어서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한다.


다가올 ‘웃픈’ 미래

개인의 삶은 고달파졌지만,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은 성장했다. 대한민국은 G20에 포함되는 경제 국가이고, GDP를 보더라도 이제는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다. 수치상으로 볼 때 성장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부분은 국내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다.

스웨덴의 의사이자 통계학자였던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서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발전한 객관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과거보다 현재가 더 나아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부정하는 비판자들이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비판한다. ‘제대로 알고 비판해!’라고 소리치는 거 같다. 실제로 책에 나오는 수치만 보고 있으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정도다.

그런데, 왜 객관적인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힘들게만 느껴질까? 저자의 말처럼 오류와 편견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일까?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지난 3월 20일 발표한 <2020 세계행복보고서>의 국가별 행복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19년보다 7계단 하락한 61위를 기록했다. 2016년부터 5년간 50위권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60위권으로 밀려난 것이다. 경제 수준과 비교했을 때 괴리감이 느껴지는 순위가 아닐 수 없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GDP와 생활 수준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살률도 치솟았다.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가 내린 인간에 대한 진단이 대한민국의 ‘웃픈’ 현실을 설명하는 해설서가 될 수 있을까?


단편적인 수준에서 하라리의 단언은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려 줄 수 없다. 수많은 원인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어서 짧은 문장으로 답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시민의 토론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 이미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선전은 긍정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연예인 조여정 분은 바쁜 출근길 자동차에서 IoT(Internet of things)로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을 통제한다. H사의 고급 승용차 선전에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알아서 차선을 유지해 준다. 최근에는 무인 주차와 출차까지 가능하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최신식 자동차는 고속도로에서 1시간 넘게 핸들에 손대지 않아도 문제없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은 계속 발전해서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국의 수학자 캐시 오닐(Catherine Helen O'Nei)은 『대량 살상 수학 무기』에서

“테크노 유토피아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부적절한 희망에서 깨어나야 한다.”

라고 경고한다. 그녀는 인간의 선입견이 반영된 빅데이터 활용이 초래한 부정적인 사례를 들면서 기술 사용이 관리자의 통제에 달려있음을 전달한다. 다시 말해서, 기술 전문가들의 편견과 문화적 관습으로 인해 오히려 차별받고 고통받을 수 있는 계층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분명히 인간의 편리와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혜택이 온 인류에게 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을까? 성장과 분배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함께 이뤄지지 않았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음식을 구걸하는 노숙자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 발전을 객관적 수치가 증거 해도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과 과거인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상위 계층은 당연히 첨단 기술을 활용해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계층은 기계로부터 일자리를 빼앗겨 신음하게 될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바로 ‘웃픈’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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