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통섭형 인간' 이라고 한다
직업으로서의 전문가
필자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늦게나마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부 졸업 이후(2003년) 거의 10년 만(2012년 가을 학기)에 학문의 길에 다시 들어서니 공부가 흥미로웠고, 논문 주제도 적절하게 선택했다. 당시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한껏 학문의 함정에 빠져 있을 때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학자의 자질을 설명하면서 오직 한 문장을 번역하는 데 평생이 걸릴지라도, 그 시간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어야 학문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엄격한 기준을 따르지 않더라도 학자로서 자질은 여러모로 부족했나 보다.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석사 논문을 끝내지 못했고, 이제 학자의 – 베버의 의미를 따르는 - 길은 과거 기억의 책장 속에 꽂아 놓고 꺼내 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 후회하는가?”라고 자문한다면, “솔직히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답할 수 있다. 만약, 학업을 지속했다면 지금쯤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을 것이고, 소논문 몇 편은 썼을 것이다. 아마도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자가 되기 위해 사용될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을 생각하면 크게 아쉽지 않다. 아직도 박사과정에 전념하고 있었더라면, 4차 산업혁명, 미래세상, 블록체인 등과 관련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졸저이긴 하지만, 현재 쓰는 글과 관련한 2권의 책(『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시대』, 『대구의 플라뇌르 대프리카를 말하다』)을 출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필자와 상관없는 – 사회과학도가 이공학이나 경영학과 관련한 분야에 관심 두는 -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4차 산업혁명 관련 출간 도서는 경영학 전공자나 이공계 전공자들이 저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을 비즈니스나 혹은 기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 교육 시스템의 문제도 있는데, 현재 학문 체계는 특정 분야의 전공을 선택해서 학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전공 외 다른 분야에 관심 두는 일을 시간 낭비나 사치로 간주하기도 한다.
21세기가 20년이 지나가고 있는 현재 『직업으로서의 학문』이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고전의 힘이기도 하지만 그 위력이 너무 커서 학문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고역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21세에도 직업으로서 전문가로 양성 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20세기의 시공간을 사는 것이다.
‘통섭(統攝)’
언제부터인지 대한민국에 ‘통섭(統攝,Consilience)’, ‘통섭형 인간’이라는 말이 등장해서 전파됐다. 이 말의 뜻을 사전적으로 풀어 보면,
큰 줄기(통(統))를 잡다(섭(攝)),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라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凡) 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라고 한다.
그리고 ‘통섭’의 학술적 등장을 살펴보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연결을 주장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 (Edward O. Wilson)의 저술 『통섭』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윌슨의 책은 이공학 전공이 아닌 사람들이 접하면 쉽게 읽히지 않을 만큼 다소 전문적이다. 다만, 그 주제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어떤 분야의 발전과 성공은 한 분야만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고 다양한 영역의 통합적 역량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 의미를 인재(人才) 양성 측면으로 확장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공하고, 적어도 밥벌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분야 외에도 관심 두고 학습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현재도 전문가 - 변호사, 의사, 각 분야의 박사들 - 들이 적정한 지적·신분적 우위를 갖고 사회의 핵심 계층으로 살아가지만, 이러한 영역조차도 계속 다른 영역과의 교류로 발전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그 성패의 논쟁은 있지만, 로스쿨만 하더라도 기존에는 법대 출신의 법조인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그 문턱이 낮아져서 다른 전공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의학 분야에도 인문학적 요소를 반영해 치료하기도 하고, 순수 하드웨어 공학이라고만 여겼던 자동차들도 점차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국내의 현실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가 유행되면서, 수많은 관련 서적들이 출간됐다. 대부분 이공계 사고와 관련한 책들이다. 아예 대놓고 이공계 사고방식을 예찬하는 책도 나와 있다. 이런 책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현대는 인문학적인 인간형보다는 이공학적인 인간형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논리적으로 쉽게 반론할 수 있으나 솔직히 현실은 논리와 다른 게 진실이다.
실제로 몇 년간 취업자들의 전공을 확인하고,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전공을 살펴보면, 인문학과 연결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국내의 경우 IMF 이후 문과 계열의 졸업자들이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할 때도 공대생들은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이공계 지인들을 만나면, “우리는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 원하는 직장(대기업, 공기업, 금융권 등)에 들어가지 못할 뿐이지.”라고 배부른 투정을 부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다가오는 시대는 통섭과 통섭형 인재를 말하지만, 여전히 이공학과 인문학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취업도 이공계 출신이 인문계 출신에 비해 수월하게 할 수 있다.
통섭형 인재를 선발한다면, 분명 이공학과 인문학 지식이 두루 함양된 사람을 선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국내 교육 시스템 자체가 양자를 통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장기적으로 볼 때 교육제도를 혁신해야 하고, 관련한 정책과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국내의 현실은 정치적 호흡만큼이나 교육의 그것도 짧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변덕스러운 변화를 수용자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능률협회컨설팅에서 『4차 산업혁명과 미래창조』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핵심내용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시스템의 변화가 없으니 시대에 맞는 인재 육성이라는 말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일본과 비교할 때 더 나은 상황일까? 오히려 일본의 교육제도를 모방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의 한숨은 우리나라에서는 통곡이 돼야 하지 않을까?
작가 : 조연호 , 편집 : 안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