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읽기'
‘그대로 읽기’는 말 그대로 작품 그 자체만 읽는 것이다. 작품을 이해할 때 먼저 작가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수월할 수 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수상작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로 처음 읽는다고 할 때, 작가 이해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제대로 하기 힘들다. 한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 인물의 연대기를 파악하고 작품 속의 의미와 연계해서 정리한다는 것은 대중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한 명씩 늘어난다. 2019년에는 2018년에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기에 두 명을 선정했다. 그중 한 명이 ‘페터 한트케’이다. 독일 국적이다. 한트케의 연보를 달달 외우고 전공하지 않는 한 작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문학, 특히 외국 문학을 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은 소설을 읽는 게 우선이지 작가 공부하는 게 우선이 아니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노벨문학상 자체가 대중 소설이 아니라 사회, 국가, 세계 등 비교적 큰 주제를 다루고, 그런 작품을 꾸준히 써 나아갈 때 수상할 가능성이 있기에(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밥 딜런’한테 밀린 것이다), 작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읽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해는 ‘제대로’라는 꾸밈을 받는다. 과연 다른 사람이 창작한 글을 어떻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접근하기 어려운 방법을 제시하기에 대중은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읽는 건, 특별한 사람들만의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한다.
그러나 과연 노벨문학상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노벨문학상은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상이다. 수천만 부가 팔린 소설 한 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상할 수 없으며(시인 중에는 있다. 아마 시집 판매도 엄청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였다 하더라도 생존하지 않으면 수상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생존 작가에게 주는 최고의 살아 있는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상 자체가 힘들고 주제 또한 거창하기에 대중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멀리한다. 쉽게 말해서 ‘어렵다’라는 이유로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작품’으로 간주한다. 물론, 1년 중 일정 기간에 - 수상자가 결정된 직후 – 수상자의 작품이 조금 많이 팔리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중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수상 이전에는 거의 모른다. 혹,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 경우 그나마 인지도가 있지만 대중 소설이 아니기에 대중의 손에 쉽게 집히는 책이 아니다.
자, 답이 나왔다.
노벨문학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대중이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잘 모른다). 이 말은 대중이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에 대해서 조금 알기 시작한다면, 처음에는 바위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던 작품이 자갈로, 그러다가 흙으로, 그리고 최종단계에는 내 안뜰에서 잘 자라고 있는 화목을 성장하게 해주는 좋은 토양이 될 것이다.
위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은 주제가 거창하다고 했다. 그래서 제대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출신(국가나 도시)과 배경(시대), 그리고 연보를 훑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작품을 읽기보다는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 올릴 때 느꼈던 힘겨움을 작가 약력을 찾으면서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가 정작 읽어야 할 작품은 읽지 못하고 저주받아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보면서 시지프스처럼 낙담하고, 혹은 ‘언제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품다가 제풀에 지친다.
이런 읽기는 전문가에게 맡기자. 그저 대중은 소설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취미로 읽으면 된다. 평론가가 아닌 이상 비평문을 쓸 이유도 없다. 즐겁게 읽으면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은 밀어 올려야 할 바위가 아니다. 읽으면 읽히고, 덮으면 보이지 않는 소설(시)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문학에 정답이 있는가? 없다. 작가도 정답을 쓴 게 아니다. 그(녀)의 생각을 허구로 완성한 것이다. 그런데, 왜 정답을 찾으려 하는가? 원래 ‘보이지 않는 길’을 제시했는데 왜 지도를 만들어서 옳은 길을 가리키려 하는가?
그대로 읽자!
그렇게 한 작가 작품을 여러 권 읽다 보면, 독자로서 작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세계 최고상을 받은 작가라 하더라도 노벨문학상 작가 작품의 주제는 그 결이 유사하다. 종종 거대한 담론에서 벗어나 사사로운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된 원인은 큰 틀에서 결정되기에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대로 몇 권 읽어대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충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그러다가 독자가 작가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면 그제야 파헤쳐 보면 된다.
‘그대로 읽기’는 본인(조인)이 읽었던 노벨상 수상작품에 관련한 이야기다. 모든 작가를 다룰 수도 없고, 다루는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다룰 수도 없다. 그럴 목적으로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전문가들에게는 환호받지만, 대중들은 잘 모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대중들이 읽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다.
연재는 철저히 개인적인 감상이 중심이다. 그리고 그 감상은 필자의 배경 지식과 관련 있을 수밖에 없다. 한 20년 전쯤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필자는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후배는 국문과였다.
“선배는 요즘 어떤 책 읽어요?” “응. 카뮈.” “어렵지 않아요?” “소설이지 뭐. 그냥 읽는 거지. 너도 읽어봐!” “아니에요. 아직 카뮈는 어려워요.”
난 그대로 읽는 중이었고, 그 후배는 좀 더 다른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이후 난 카뮈 전집을 다 읽었고, 그 후배는 여전히 카뮈를 읽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