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이명(耳鳴) 인가?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는 뭐가 달랐을까?
몇 년 전에 차량 공유 기업의 선두업체 ‘우버(Uber)’가 한국에 상륙했으나, 서울시와 택시업계의 반발로 철수한 사건이 있었다. 관련 종사자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으니, 적극적으로 저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유경제가 트렌드로 정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버가 철수한 것을 두고 시대착오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당시 숙박업계에서는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Airbnb)가 잘 정착하고 있었고, 실제로 국내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었다.
‘자동차’와 ‘숙박업’이라는 분야의 차이만 제외하면 거의 같은 상황인데, 전자는 철수했고 후자는 잘 정착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대로 규제하지 못했고, 더 정확하게는 규제할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관련 산업에 지침을 주고 감독해야 하는 관공서의 준비가 상당히 미흡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최근에는 다양한 법규가 만들어져 공유경제가 빠르게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규제 공화국”이라는 비웃음을 받을 만큼 정작 자유로워야 분야의 문지방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사례를 보면, 우리 사회가 미래 산업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절망의 두려움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생존권에 위기의식을 느낄 경우, 아무리 좋은 혁신과 정책도 강력한 저지에 막혀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급기야 폭력적 봉기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미래사회의 세 부류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미래사회는 세 가지 계층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부류는 상당히 유동적이면서 성공한 “가담자”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알며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연히 미래사회를 리드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겉보기에는 유동적이지만 감독의 대상이 되는 “포함된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을 개혁하거나 이끌어 갈 수는 없지만, 맡은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희망도 없고 비유동적인 “제외된 자”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요즘 말로 ‘루저’로 살아 갈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새로운 혁명 시대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어떤 부류에 속하게 될까? 그리고 우리 각 개인은 어떤 부류가 될까?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현실을 고려할 때 “가담자”가 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국민은 국가 수준과는 별개로 또 세 부류로 나눠질 것이다.
그나마 “포함된 자”가 가장 많은 구성원을 차지한다면, 사회는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사회는 가운데가 불룩한 항아리 형태가 아니라, 첨탑처럼 뾰족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산업혁명(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 가야하고, 새로운 정치제도(지방분권)를 논의해야 하는 지금, 저자(자크 아탈리)의 말이 큰 경고의 외침으로 들려오는 것은 필자만의 이명(耳鳴)일까?
그러나 방법이 있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략
MIT공대의 경영학과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 교수는 『기계와의 전쟁』에서
“인간의 능력과 제도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토론하며, 인간이 기계를 상대로 경주할 것이 아니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 이해해야만 한다.”
라고 말한다.
즉, 인간은 새로운 기술 발전을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따라가지 못함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해결방법을 찾을 때 문제의 원인, 혹은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못할 경우 해결방법은 요원해진다.
그러나 일단,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인식하게 되면 해결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저자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일단,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 어떻게 대처할 건지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기계를 대척해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키지 말고 인간과 기계가 공존할 수 있는 전략 세우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후에 출간한 『제2의 기계시대』에서 그 전략을 구체화 시킨다.
“미래의 성공은 기술 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새로운 조직과 제도의 공동 발명에 달려있다.”
라고 말했는데, 전작에서의 추상적인 ‘전략’이 ‘조직’, ‘제도’의 공동 발명으로 구체화 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새로운 기술혁명을 담는 방법을 발명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그릇이 될 수 있는 조직이나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초기에는 미흡할 수도 있고, 제대로 운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미흡한 제도나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국가와 사회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국가와 사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따져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공동 발명은 국가의 몫이 아니다
거대한 파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선전은 무성하지만, 개인이 어떻게 준비하고 적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가가 직접적인 정보를 주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자.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세밀하게 대응하기 힘든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 주도의 국가 운용은 한계에 봉착한 지 오래다. 특히 정보화 시대가 도래한 이후부터 ‘포스트 거버먼트’에 대한 움직임이 계속 있었다. 과거와 비교할 때 더 다양한 국민의 바람과 요구사항을 처리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건설적인 토론을 진행해서 얻을 수 있는 해결 방법을 과연 정부가 다룰 수 있을까?
공동 발명은 니즈(needs)가 유사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토론해서 얻은 결론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조직’이거나 ‘제도’일 수도 있다. 아울러 상시적인 토론이 이뤄져서 수시로 개선, 발전해야 하기에 거창한 담론만 무성한 정부의 토론은 실질적인 방안이 도출되기 힘들다. 마치 나폴레옹 전쟁 이후 개최된 ‘빈회의’를 지켜보면서 “회의는 전진하지 않는다. 오직 춤출 뿐이다.”라고 말했던 리뉴 후작(Charles-Joseph, 7th Prince of Ligne)의 말을 21세기에 다시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정부보다 세밀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바탕이 될 때 공동 발명은 더 쉽게 이뤄질 것이다.
작가 : 조연호 , 편집 : 안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