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그대로 읽기" 20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by 조작가Join

“미완의 퍼즐 : 되찾은 것들의 상실 ”


잃어버린 기억 : 절대 완벽해질 수 없는


주인공은 ‘기’로 불린다. ‘기 롤랑’. 기억을 잃어버렸기에 흥신소 사장이 붙여 준 이름이다.


"이제부터 당신 이름은 ‘기 롤랑’이오.” 『본문 중』


사설탐정을 8년이나 했다. 사설탐정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일들을 조사한다. 작가는 기억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에게 최적의 직업을 마련해 줬다.

이제 주인공은 타인의 궁금증이 아니라, 본인의 의문을 파헤쳐서 해결하기 위해서 떠난다.


“예. 나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 말입니다......” 『본문 중』


완벽하지는 않지만, 하나씩 연결고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부족한 듯한 퍼즐을 끝내 다 맞춘다.

자신이 누구였고 어떻게 연인과 헤어졌는지 알게 된다.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완벽하지 못한 기억과 추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도록 하고, 사진에 있는 본인을 본인으로 확신하지 못하게 한다. “저랑 닮은 거 같지 않나요?”라는 질문은 사라진 기억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다.


기억을 찾는다는 의미


가즈오 이시구로(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는 『파묻힌 거인』에다가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올 때의 혼란을 담았다. 기억이 돌아오면 진짜 ‘나’를 찾았다는 감격과 낙관적인 앞날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는 과거가 좋았을 때만이다. 그러나 과거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든, 좋은 과거와 그렇지 않은 과거를 동시에 기억하고 살아간다. 사람에 따라서 긍정적인 면을 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왔을 때 행복이 될지 아니면 절망이 될지는 당사자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애써 기억을 찾으려 한다. 이 말은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방증(傍證)이다.

우리는 종종 대화 가운데 “왕년에 내가 말야....”라는 말을 종종 하거나 듣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본문 중』


그런 사람의 현재는 과거를 허풍으로 만든다. 지금, 이 순간 미래의 바람을 과거의 기억으로 꿈꾸는 듯하다.

주인공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다. 8년 동안 연마한 기술을 제대로 발휘하려고 마음먹었다.


나의 기억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


주인공은 여러 사람을 만난다. 과거에 그를 알았던 사람도 만나고, 그가 알았던 사람을 아는 사람도 만난다. 특히, 그를 아는 과거 지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그가 이상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더 궁금해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기에 기억이 일부 흘려졌다고 생각한다.

10년이 지난 이야기를 하고,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을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그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그 시절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타인(주인공)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 물론, 주인공 역시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말을 정직하게 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기억이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사라진다고 여기는 듯하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 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본문 중』


현재 그가 아는 것은 여러 사람이 갈무리해준 자료와 기억을 되찾는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부다. 그리고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것들. 작품 후반부에 주인공은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 듯이 이야기한다. 어디서 일했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으며, 어떻게 연인과 헤어졌는지 모두 기억 속에서 실토한다.


“이제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우리들 모두가 므제브로 떠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이 단편적으로 기억에 되살아난다. (중략) 여전히 눈이 오고 있었다. 나는 헛되이 어떤 목표물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계속하여 걸었다. 나는 여러 시간을 걷고 또 걸었다. 이윽고 나는 눈 속에 드러눕고 말았다. 나의 주위에는 오직 하얀 빛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본문 중』


소설은 이런 기억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추상화한다.


“나는 마지막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즉 로마에 있는 나의 옛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 가보는 것 말이다.” 『본문 중』


밤거리를 걸어보자. 조명이 화려하게 켜있는 동안에는 낮과 다를 바 없다. 단지, 분위기가 다를 뿐이다. 오히려 밤이기에 더 잘 보이는 상점도 있다. 그러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어두운 거리가 되면, 상황은 다르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닌 이상 낮에 봤던 상점의 위치도 잘 찾지 못한다. 실제로 가려고 했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갈 수도 있다.


그는 기억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기억난다고 생각하는 모든 내용은 완전하지 않다. “단편적으로 기억에 되살아난다.”라는 그의 말이 기억의 미완성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一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본문 중』


기억 상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 떠나다가 두 연인은 당한 것이다. 그는 기억을 잃고 여인은 실종됐다. 그 상실감으로 모든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지운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일부러 버린 기억을 되찾으려고 한 것이다.


기억을 찾았을 때 그는 깨닫는다. ‘내가 버린 것이구나.’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제 돌아온 - 조금은 왜곡된 – 기억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되새기면서 살아야 한다. 과거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는 것일까?

아이들은 어린 시절 – 고통스러웠던 기억 - 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유는 이후 삶의 만족도가 높았거나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만큼의 충격적인 사고가 과거의 기억을 묻어두는 것이다. 다만, 잠재의식 속 트라우마가 있어서 이유 없는 반항, 기이한 행동 등의 이유가 된다.


기억의 재단(裁斷)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작가는 주인공의 기억 찾기를 통해서 독자와 무엇을 나누고 싶었을까? 해설서에 나온 대로 전쟁이 주는 상실감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뚜렷이 보이는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기억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모든 걸 똑같이 기억할 수는 없다. 그게 기억의 한계이다.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은 과거를 어렵게 회상한다. 그들의 기억도 제대로 믿을 수 없다. 그러면서 잃은 기억을 모아가는 데 조금씩 보탬을 준다. 그런 편린(片鱗)들을 엮어서 주인공은 조야(粗野)하게 기억의 퍼즐을 맞춘다. 기성 퍼즐은 잘 오려져 있어서 서로 아귀가 잘 맞지만, 기억의 퍼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아서 맞지 않는 부분은 본인이 원하는 크기로 재단하게 된다.


과연 주인공의 기억은 잘 재단된 것일까? 그가 생각했던 본인이고, 그가 생각한 연인이었을까? 여러 사람의 증언이 있지만, 그들의 증언은 전혀 왜곡되지 않은 진실일까? 마치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미로와 같다. 길을 잘못 들면 괴물을 만나 목숨을 잃고 만다.


삶이 그렇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도 없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해야 할 때도 있다. 양자 중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선택한다. ‘기’는 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지 않을 수도 있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되찾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완벽하게 돌아오지 못하는 기억, 찾아도 진실이 아닐 수 있는 기억.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본문 중』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이제 ‘기’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그는 ‘기’의 삶도 같이 가져간다. 이제 그는 ‘기’일까? 아니면 원래의 ‘멕케부아’일까?

미래는 보이지 않고 오지 않은 과거이고, 현재는 곧 과거가 된다. 그리고 과거는 어둠 속의 흐릿한 상점의 간판처럼 명확하지 않다. 이런 “모퉁이를 돌아버리면 사라져버리는 슬픔과 같은 삶” 속에서 어떤 이름으로 살든 뭐가 중요할까?


“한 어린 소녀가 황혼 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소녀가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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