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골리앗, 그래서 사라질 것인가?
1차 산업혁명은 기계 혁명이었다. 그 시절에는 대혁명을 비롯한 혁명이 유럽 전역에서 발발해서 기독교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미국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신앙의 자유를 염원한 청교도들이 수립한 국가여서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석학 알렉스 드 토크빌(Alexis Charles Henri Clérel, viscomte de Tocqueville)이 미국을 여행하면서 저술한 『미국 민주주의』나 독일의 막스 베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보면 미국 정신의 근본이 기독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루 24시간 내내 상품 생산이 가능해졌고, 대량생산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이 본격적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 자리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개신교가 조선에 전파됐으며, 큰 문화 충격을 가져왔다. 처음부터 기독교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우호적으로 수용하지도 않았다.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수준으로 있다가,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등이 발발하자 그러지 않아도 개방에 부정적이었던 당시 조선은 쇄국 정책을 더 굳게 했다. 서양과의 전쟁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나 원인의 빌미는 서양 선교사의 박해와 죽음이었다.
이러한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자신감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고, 세계적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한 시행착오였다. 사상적으로 생각해 보면,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의 대립으로 인한 관념의 충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후 서양의 접근이 느슨해지는 듯했으나 이윽고 일본의 강압으로 1876년 ‘조일통상조규’(강화도 조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조일통상조규이다)가 맺어진 후에는 봇물 터지듯이 서구 열강의 강압적인 침탈이 이루어졌다. 역사를 현재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의미 없으나 당시 쇄국이 아니라 개방정책을 취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던져 보고 싶다.
서양의 문화, 문물 등은 당시 조선에서 쉽게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 500년 동안 계층 간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반이 됐던 유교와 만민평등사상을 전파하는 기독교는 어쩔 수 없이 ‘관념의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충돌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세기 말에 싱가프로의 수상 리콴유(Lee Kuan Yew) 등을 통해 ‘유교 민주주의’가 등장했는데, 서구 민주주의와는 다른 아시아의 가치와 결합한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여전히 ‘동양적 VS 서양적’이 존재하는 셈이다.
결국, 조선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광복 후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시도한다. 근대화와 한국 기독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근대화 기간에 개신교의 성장세는 여타 종교와 비교할 바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화는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미국식 표준을 따른다는 의미였다. 현재까지도 자주국방을 이루지 못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광복 후, 6·25 전쟁을 겪은 후 미국의 원조는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미국에 기대고 있었다. 한국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기에 당시 미국을 추종했던 정치권과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부흥’은 이 시기에 어울리는 단어였다. ‘천만 성도’를 선전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당시에도 있었던 기독교의 폐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마천루 아래에 생기는 그림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근대화와 그럭저럭 궁합을 맞춰가면서 성장했던 기독교는 ‘정보화 시대’로 일컫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성장이 예전만 못했다(시기적으로 한국 교회의 성장은 1970년대 이후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3차 산업혁명을 말하면 1970년대를 기점으로 보는데, 한국은 당시 정보화를 운운할만한 수준의 국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2차 산업혁명을 뒤늦게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최근 종교인구 조사를 보면 개신교 인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교파별 자체 조사를 보면 성도 수가 줄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으나 개신교인 숫자가 허수라는 분석에 대부분 동의한다).
‘정보화 시대’의 한국 교회는 과학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올 때는 시대의 선진문물을 수용하는 가교(架橋)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울러 냉전체제 종식 후 기독교는 이데올로기의 방파제 역할도 못 하고 있다. 종교는 무형이며, 관념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기에 인간의 정신적 역할이 줄어들면, 그 힘은 당연히 쇠락한다.
정보 기술이 발달한 3차 산업혁명 시대가 성숙하면 할수록 인간 정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종교 대신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예를 들어 인터넷, SNS 등이 현대인의 종교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정보화의 맛을 조금 늦게 본 한국 교회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규모에 천착했던 근대화 시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1990년대 독일의 통일, 소련의 해체로 이데올로기의 승부는 일단 가려졌다. 사상적으로 흑백논리가 무너지고,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구호가 선봉이 돼 기독교에‘선 빵’을 날렸다.
규모만으로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교회는 근대화 시절에는 시대적 랜드마크로 견고한 철옹성을 구축할 수 있었기에 외부의 공격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저격수가 돼 사방에서 달걀을 던지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내 달걀은 쌓이고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니 교회로 찾아오는 발걸음을 돌리도록 했다.
기존에 쌓아 놓았던 재고(在庫)와 한국의 각 계층에 자리 잡은 위정자들의 힘으로 21세기가 20년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도 한국 교회의 위치를 간신히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은 계속 줄어들 것이고, 이제 병든 골리앗이 된 교회는 세상이 던지는 다윗의 물매에 정수리를 맞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한국 교회는 사라지고 있다. 다른 말로 죽어가고 있다. 부활 신앙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기독교이기에 새로운 부활을 믿을 수도 있지만, 이제 죽고 나면 부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 세대 신앙 인구는 현저히 줄고 있다. 특히, 교회학교 구성원이 계속 줄고 있다. 인구와 관련한 부분에서도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여서 다음 세대 인구는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다. 최근에 나온 보도를 보면, 세계에서 최초 인구 소멸 국가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인구학적인 문제도 있지만,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다.
‘개독교’, ‘먹사’라는 말이 오래전에 등장해서 이제는 욕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인구가 줄어드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데, 이미지도 좋지 않으니 더 빨리 줄어든다.
다음으로 콘텐츠 문제다.
세상의 것과 비교해서 현저히 부족하고, 수준도 떨어진다. 과거 선진 문화를 자랑했던 기독교의 찬란했던 위상은 이제 애써서 역사책을 뒤져야만 찾을 수 있는 화석이 됐다. 굳이 세계 역사가 아니라 국내 역사만 보더라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문화 흐름을 주도했던 기독교는 성(城)처럼 생긴 교회 모습처럼 고리타분해 보인다.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기독교는 ‘꼰대’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 청소년층과 청년층이 거부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젊은 층 교인이 줄 수밖에 없다. 노인만 가득하고, 젊은 세대가 늘어나지 않는 현실이 계속될 경우 교회는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이제 곧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기술이 신처럼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기술과 인간이 잘 융합해서 인간이 신처럼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산업혁명은 때로는 기독교 성장에 도움이 됐지만 그 반대일 때도 있었다. 변증법적인 발전도 가능하지만, 역 변증법적으로 소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산업혁명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교인과 목회자의 현재 모습을 보면 그런 임무 수행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