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상 읽기 : 3부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8)

권력과 자본과 타협한 한국 교회

by 조작가Join

한국 기독교는 권력과 타협의 산물이었다


미개한 조선이라고 여기며, 우리 민족을 하대했던 선교사들도 있었고, 그 반대로 진심으로 조선 백성을 사랑으로 품어준 선교사들도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안동교회와 같이 양반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었고, 백정들과 같은 천민들이 다니던 승동교회도 멀지 않은 곳에 세워졌다(현재 안동교회는 윤보선길에 위치하고, 승동교회는 인사동길에 있다).


당시 기독교의 도입과 전파, 그리고 확산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민씨 일족 중 한 명인 민영익을 치료해줬던 알렌(Horace Newton Allen) 선교사가 세브란스의 모태인 광혜원을 설립했으며, 이후 알렌은 권력층과 가깝게 지낸다. 이후 사립대학교로는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 학교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단순히 선교사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란 의미다.


구한말에 유입된 초기 기독교는 당시에는 진보적인 문명과 기술이라고 여겨졌는지는 모르지만, 국내외 압제로부터 백성을 구원하려는 목적만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비현실적인 낭만주의에 빠지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평등의 이념을 전파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신분 질서나 정치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일본 식민지가 된 이후 대다수 선교사는 일본과 타협했다. 기독교 정신은 민족주의와 결합해서 독립운동 정신으로 승화하기도 했지만, 교회 자체는 식민통치 전반에 걸쳐 일본에 협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일제 말기의‘신사참배’이다.


해방 후‘신사참배’에 대한 변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를 지켜내기 힘들었을 것이다.’라는 상황 논리다. 십계명의 첫 계명이 우상 숭배와 관련한 내용인 것을 상기해 본다면, 그 시대에 교회에서 믿는 하나님은 어떤 존재였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혹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기철 목사같이 순교로 신앙을 지켰던 인물이 믿은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권력과 타협한 기독교의 역사는 기독교가 공인된 서기 313년 이후부터이다. 박해를 받으며, 그리스도 정신을 계승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권력의 중심부에 선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 대신 복수의 진노를 퍼부었다. 예수를 못 박은 유대인들을 핍박하면서 복수이 얼굴에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가해자의 역할을 정당화했다.

한국 기독교도 다르지 않았는데, 초기에 박해받을 때는 ‘사랑’을 강조하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민중 속으로 다가갔지만, 권력이 생기니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바둥거렸다. 남한보다 북한에서 더 융성했던 기독교는 광복과 더불어 공산주의자들과 대립하게 되고, 물리력이 없었던 기독교 세력은 원치 않게 남한으로 내려온다.


6·25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수많은 기독교인을 살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기독교 청년당’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북 청년당’도 그 못지않게 공산주의자들을 살상했다. ‘원수도 사랑하라!’라는 신약의 말씀은 전쟁 중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의로운 분노는 사랑보다 강했다.

성전(聖戰)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참혹한 3년이 지난 후, 한국 기독교는 정전과 더불어 반공의 보루가 돼 철저하게 권력과 결탁했다. 그 결탁의 결과로 얻은 성과가 현재 공항에 착륙하기 전, 저녁 시간에 볼 수 있는 화려한 교회 십자가 불빛이다.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 질서를 철저히 옹호했다. 그리고 기복 신앙을 설파하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와 더불어 성장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대통령들도 교회 세력을 존중하고 공존을 모색해야 할 정도로 한국 기독교는 힘이 있었다. 즉, 한국 근대화 시기는 교회가 성장하고 성공했던 시공간이었다.

개헌 국회부터 기독교 세력은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 중에도 많은 기독교인이 있었으며, 개중에는 몇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그 비중은 줄어들지 않았다. 기독교는 정치, 교육, 복지시설 등 교회 자체를 제외하고도 여타 사회 시스템의 주요 기관을 차지했고, 이러한 든든한 자원 덕분에 반대 세력의 거센 저항에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교회가 지키려 했던 가치는 항존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 그 중심이 바뀌었다. 초기 기독교는 신 앞에 모든 인간의 평등함을 강조하면서 유교와 맞섰고, 그 후에는 생존이 목표였다. 그러다가 해방 후에는 적개심을 바탕으로 한 반공으로 ‘빨갱이 이데올로기’의 주역이 됐다. 현재는 자본주의의 선봉을 자처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근거는 절대로 성경이 아니다. 오직 권력에 근거한다.


교회의 자원은 어디로, 누구를 위해서


교회는 성공한 자들에게 축하연을 베풀긴 했어도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곳이 아니었다. 복지시설을 운영한다고 해서 약자를 위한 기관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는 봉사와 자선이지만, 속으로는 내부 세력의 자원 나눔이다. 대형교회가 설립한 단체들의 내부를 살펴보면, 교회 중역들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무조건적 자선이 아닌, 전도 목적이 있는 행위이다.


필자가 다니던 교회는 구제 비용으로 재정의 20%를 사용한다고 자랑했다. 즉, 대부분 교회가 재정의 20% 정도도 자선 행위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80%는 어떻게 사용하는 것일까?


현재 한국 교회가 계승하는 것은 무엇인가? 겉으로는 예수 복음을 전하고 약자 편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외친다고 선전한다. 그런데,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예수 복음을 현시대에 맞게 계승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종종 집회 강단에 서는 목사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처럼 보인다. 혹은, 그들이 믿는 하나님보다 스스로 더 높은 곳에 위치시킨다.

이들의 성경 해석은 구약 시대에 머물러 있고, 논리는 20세기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 무지한 교회가 적지 않으니, 교회는 석양의 태양처럼 떨어지고, 스스로 과거 향수에 빠진다.


이런 고답적인 교회의 행태는 엘리트주의를 신봉한다. 말 그대로 많은 엘리트 교인이 다니길 선호한다. 쉽게 말해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많아야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많아야 좋다. 세상을 지배할 힘이 엘리트들에게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한 교회 목사는 청년부 구성 자체를 명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명문대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더 큰 교회를 찾아 떠나니 말이다. 더 큰 우물을 찾아 작은 우물을 떠나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한 인물과 책이 떠 올랐는데,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잘 되는 나』였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필자도 읽어봤는데,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기만 했던 시기에 작가의 말처럼 ‘세상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인식할 필요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잘 되는 나』는 엘리트를 추종하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돼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이후 여러 좋지 않은 소문과 함께 이전의 긍정적인 이미지마저도 잃게 됐다.


교회에서 말하는 명품 교회와 웰빙 교회


한때 ‘명품교회’, ‘웰빙교회’와 관련한 설교를 교회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명품은 말 그대로 부자들의 전유물이다. 서민들이 명품을 소유하고 있으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된장녀’ 등과 같은 표현은 부자들이 명품을 휘감고 다닌다고 해서 생긴 말이 아니다. 충분한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을 밝힌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명품교회’는 서민 성도를 배제한다는 교회의 암묵적인 구호이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헌금 안 낼 거면 오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차원에서 명품주의를 의미하는 거라고 아우성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정직하게 따져보자.

한국 교회는 노숙자가 교회에 출입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왜냐하면, 적응하기 힘든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로 비싼 땅에 우뚝 서 있는 교회에 가 보라! 서울시 전역에 노숙자 수가 수십만 명일 텐데, 철옹성 같은 그 교회들 속에는 예배드리는 노숙인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다.

예수의 신부로 자처하면서 세워진 교회는 예수가 만나고 만져주고 치료해준 사람들은 버리고, 오히려 외식하는 자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명품교회’는 엘리트주의를 추구하는 교회의 다른 명칭일 뿐이다.


‘웰빙교회’는 그 뉘앙스만 따지면 인간 복지와 관련한 언어이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웰빙 자체가 중산층 이상인 사람을 전제로 한다. 생존과 관련한 말이 아니라 기본적인 의식주는 이미 충족한 후에 더 부유한 삶을 추구하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전하는 메시지다. 역시 예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교회가 사용하기에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언어이다.

그렇다면, 왜 교회에서 사용하기에는 괴리가 있는 “명품”, “웰빙”이라는 언어를 사용했을까?


한국 교회 성장과 엘리트주의는 자본주의와 연관이 있다. 성도가 늘어야 헌금이 늘어나고, 엘리트가 늘어나야 헌금 액수가 커진다. 물론, 변명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물질을 좋은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믿기 힘든 이유를 댄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금세 허언(虛言)으로 밝혀진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교회 재정의 극히 일부만이 구제로 사용할 뿐이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면서 변신을 거듭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시대 권력의 핵심 요인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듯하다. 즉, 이 시대 권력의 핵심이 ‘돈’이라는 걸 파악했기에 돈과 관련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명품’, ‘웰빙’ 이 모든 게 이 시대 권력이 나은 언어들이다.


돈 없으면, 봉사하기도 힘들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한국 교회가 추구하는 성장 이데올로기 역시 인간의 탐욕을 바탕으로 한 그릇된 자본주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왜곡된 자본주의 예는 헌금으로 성도 직분을 결정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 헌금 액수로 직분을 주고, 헌금 액수가 부족하면 부여했던 직분을 거둬 가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 봉사를 위해서도 자격 조건을 따지는데, 그중에는 헌금이 포함돼 있다. 아래는 필자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다.


필자는 군대 전역 후 시민 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에 소득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소득이 전혀 없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루하루를 어렵게 연명했던 시절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교회에서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권유해서 청소년부 교사를 지원 했다. 권유해서 지원했는데, 결과는 보류였다. 관련 부서와 관련 있는 사역을 오래 했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보류된 이유를 담당 장로를 찾아가서 물어봤다. 담당 장로는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었는데,


필자 : (예의를 갖춰서) 제가 이번에 교사를 지원했는데, 보류되었더라고요. 이유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장로 : (머뭇거리다가) 교사 선정 기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어서 보류됐어.

필자 : (놀라며) 예? 어떤 부분이 부족한가요?

장로 : (눈을 피하면서) 십일조를 하지 않고 있더라고.

필자 : (어이없어하며) 제가 현재 수입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일조를 할 수 있을까요?

(다음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장로 : (당연하다는 듯이) 수입이 없으면, 월 10만 원 정도를 십일조로 내면 돼.

필자 : (웃으면서) 수입이 없으면, 교사를 하지 말라는 거네요?


모든 교회가 위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회가 있다. 수입이 없는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을 도와주고 교회 안에서 보살펴 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인 데 필자가 다녔던 교회는 수입이 없으면 가상의 수입을 설정해서 헌금하라는 교회였다.


누구를 위한 ‘천번제’인가?


많은 교회가 구약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의‘천번제’를 모방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 앞에 천 번의 예배를 드리고 축복받은 성경 내용을 모방한다.


필자는 이런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필자 대신 참여하셨다. 한 번 헌금으로 1만 원을 냈으니, 수년에 걸쳐 필자가 다니지 않는 교회에 필자 이름으로 천만 원의 헌금이 드려졌다. 제발 하지 마시라고 부탁 말씀을 드려도 자식의 평안과 잘 됨을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비슷한 예로 다니던 교회에서도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참석한 성도들이 기도할 테니 특별 헌금을 내라고 했다. 순간 드는 생각은‘나 대신 기도를 해주니, 헌금은 내야겠구나.’였다. 이런 마음으로 몇 주간 헌금하다가 그만두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성베드로 성당을 새롭게 단장할 목적으로 구 가톨릭에서 팔아댔던 면죄부와 뭐가 다른가? 헌금통에 떨어지는 돈 소리와 함께 지옥에 있는 영혼이 천국으로 이동한다는 근거 없는 헛소리에 우매한 민중은 그대로 속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루터가 그것을 계기로 95개 조 반박문을 붙였을까?


한국 교회는 본인이 참여하지 않는 예배를 헌금으로, 본인이 참여하지 않는 기도회를 역시 헌금으로 대체하면, 참석한 자와 똑같은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허언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왜곡된 자본주의가 교회 내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루터가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회 앞에 반박문을 붙이다가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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