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상 속에서 영적인 인간이 머무는 최후의 시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의 세속화가 급격하게 진행하고 있어서 언제 방어벽이 무너질지 모른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내용은 거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삼중 장벽을 굳게 건설해서 거인들이 인간 세상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고 그들의 움직임을 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장벽이 무너지고 거인들이 진격한다. 10M가 넘는 거인들은 오직 인간만 잡아먹는데,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멸망의 위기에 놓인다. 더 충격적인 것은 진격의 거인을 막아서는 특공대원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거인으로 변하기도 하고, 50M 방어벽을 무너뜨린 거인도 인간 중에 있었다. 정말 무서운 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내부의 적이었던 셈이다.
《진격의 거인》은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수동적인 방법으로 방어벽을 세웠으나 그 한계에 이르니 거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은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교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금과 같은 장벽으로 교회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보호하기 힘들 것이다.
교회학교에 출석하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출석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신앙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을 살펴봐도 긍정적으로 답하는 청소년들의 비율이 낮다. 가장 기초적인 질문인 구원의 확신에 관련한 질문에도 십 중 팔 구가 부정적이다. 어쩌면, 이들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부모에 의해서 혹은 관성 인지도 모른다.
조금 나이가 많은 청년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 교회의 청년부는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결혼 전까지의 성도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청년부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청년들도 학교 일과 교회 일이 동시에 겹쳤을 때 학교 일에 우선순위를 둔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오로지 공부만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대학 입시로 인해 중고등부 수련회는 소수의 인원만 참여하는 실정이다. 특히,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참여가 더 저조하고, 목회자나 장로들의 자녀들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필자가 청년 시절에 다녔던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누군가가 “왜 장로님 따님은 수련회에 안 가죠?”라고 용기 내서 물으면, “학교에서 못 가게 하는데 어떻게 하나?”라고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과거에는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면 학생들에게는 합격을, 취업을 준비하는 자들에게는 직장이 생긴다고 설교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장로들과 목사들이 인정하는 셈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목회자와 장로라는 직책으로 열심히 교회에 나옴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다른 교인들에게 득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녀들의 대입 실패가 그들의 권위를 깎는 일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교회의 대표적인 직분들이 기복신앙에 얽매여 있음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이다.
세 가지 방어벽
교회를 보호했고,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방어벽이 무너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방어를 위해 성을 쌓았던 제국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다양한 주장이 있겠지만 로마는 성벽을 쌓기 시작하면서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중국의 위대한 만리장성도 영원한 방어벽이 될 수 없었다.
물론, 생각에 따라서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어벽을 쌓는다는 건 외부에 두려운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벽 내의 평화가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기간이 오래되면, 고인 물처럼 부패하기 마련이다.
교회가 실수를 거듭하고 혁신하지 않고 방어벽을 쌓았음에도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이 있었다. 그러나 굳건하게만 보였던 방어벽도 긴 세월에 노후화되고, 더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지켜낼 수도 없을 만큼 약해졌다.
무너진 첫 번째 방어벽 : 다음 세대가 없다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과 그 과정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한국 교회는 수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천만 성 도’를 운운했고, 세계 2위의 선교 국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실제로 세계 선교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수적인 증가는 곧 재정 증가로 나타났고, 그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갔다. 하지만, 지속해서 성장할 것 같았던 한국 교회는 곧 수적인 정체에 이르게 됐고, 이 정체는 쉽게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곧 교인 수가 줄어들어 소멸하는 교회가 하나, 둘 생기고 넓은 교회 공간들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카페가 될 수도 있고, 유흥업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끌어들일 콘텐츠가 부재하다. 교회의 메시지가 현시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메시지 자체가 고루해진 것이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런 자유 속에서 늙어버린 교회에 다니려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얼마나 있을까? 당연히 그 수가 줄 수밖에 없다.
다음 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문제점을 내부적으로 산출해 보지만, 당장 교회 운영에 탈이 없으니 시급한 문제로 간주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많은 교회가 교회를 다시 짓거나 증축한다. 새로운 건물이니 당연히 시설은 좋으나, 다음 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주 이용자가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대형 교회에 가도 비슷하다. 창의적인 청소년, 청년을 배출하기 위한 교육은 진행하지 않고, 오직 목사의 설교만 잘 전달되고 되풀이하는 데 지장 없는 수준의 시스템만 갖춘다.
물론,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거나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의 좋은 프로그램과 비교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실적 과시용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나열한 수준일 뿐 프로그램의 질적인 부분까지 좋다고 할 수 없다. 결국, 나이 든 교회는 새로운 젊은 피를 수혈하지 못하고 언젠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상황이다.